한지들이 제자리 찬아 앉을 때면 하나님 하신 일 느껴...11월 29일 '화가의 아내전'

▶작가 김재임은…
11월 29일부터 12월 4일까지 인사아트센터전관에서 <월간미술세계> 창간 23주년 특별기획 ‘화가의 아내-김재임 초대전’을 연다. 스물다섯 번째 전시회이다. 2006 한국여류화가회 중화민국국제전, 2005 서울현대미술 시드니전, 서울 원로 중진 작가전, 한국 미술인선교회 초대전, 2004 청계천의 어제, 오늘, 내일전, 2003 서울특별시 원로중진 작가전, 1995 제21회 동경전, 1993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기념 현대작가 초대전 등에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한국미술협회, 한국여류화가회, 아시아기독교미술인협회, 서울미술협회, 한울회, 한국미술인선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갈보리교회 권사이다.

작업실을 겸해 쓰는 작가 김재임(71세)의 공간은 거실 바닥에 깔아놓은 화폭들과 물감들로 복잡했지만 한지로 하얗게 바른 벽지에다 그녀의 손길이 묻어 반질반질한 물건들로 오히려 정갈하였다. 베란다 옆 작은 탁자에 앉기도 전에 그녀의 이야기가 물방울처럼 톡톡 튀었다. 

 ☞ 예원학교에서 정년 마친 뒤에도 계속 가르쳤지. 정식 교사는 아니지. 그렇지만 난 뭐 그만하라, 할 때까지 일한다는 생각으로 하거든. 게다가 젊은 아이들 만나는 게 즐겁지. 그런데 올 봄에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 오지 말라고. 언젠가 그만둘 거란 생각을 했으니까 그러마 했는데, 이상하게 입술이 부풀어. 한의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뭐 속상한 일 있어요?’ 그러더라구. 그래서 학교 그만둔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래서 그런 모양이라 그러데? 그리고 집에 왔더니 편지가 한 장 와 있는 거야. 미국의 예일대학에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10개월 동안 와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 온 거야. 학교에서 비용을 몽땅 대줄 테니 와 달라는 건데 당연히 간다고 했지. 그걸 보낸 날짜가 3월 1일자였는데 그날이 예원학교에서 그만 와도 된다는 연락을 받은 날이거든. 그러니까 하나님은 요기서 닫고선 요기서 열어주신 거잖아. 재밌죠?


신기하다, 재밌다 대답을 할 겨를도 주지 않고 그녀의 물방울 같은 이야기는 또 튀기 시작한다.

☞ 자화자찬 같지만 아무도 나 보고 화났다 하는 사람이 없어. 얼마나 좋아? 며칠 전에 요만한 애들이 와서 묻는 거야. “할머니, 교회 나가세요?” 그렇다고 대답하고 “왜? 어떻게 알아?” 하고 물었더니 “그저 그렇게 보여요” 그러는 거야. 아이까지 내가 교회 다니는 거 알아준다니까. 난 이렇게 자부심 같고 살아.


그녀의 이야기는 어릴 때 아빠가 얼마나 아끼며 사랑했는지, 지금은 하나님께로 간 남편을 어떻게 만났고, 또 얼마나 어렵게 결혼을 했는지, 그렇게 한 결혼생활은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했는지, 아이들이 또 얼마나 또박또박 잘 자랐는지,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버렸는지,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전시회 카탈로그를 꺼내오고, 손님들이 오면 주기 위해 준비해 둔 소품들을 꺼내왔다. 그녀에겐 어린 소녀의 웃음에서 나이 든 할머니의 미소까지 동시에 엿보였다. 그녀는 20년 동안 출석하는 교회의 주보 앞면에 자신의 작품을 담아오고 있다. 목사님이 설교할 본문과 제목을 가르쳐주면 그녀는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한지를 찢어 맞추는 방식을 택하였다. 설교할 때 그녀의 작품은 강단 옆에 세워두고, 예배 후엔 설명도 곁들었다.

☞ 내가 만든 작품과 목사님의 설교가 서로 맞아떨어지면 전율할 만큼 반가워. 대개 준비하고 기다렸다가 말씀을 받게 되는데, 때론 얼른 떠오르기도 하고 안 떠오르기도 하지. 그러나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어느새 저절로 돼.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닌 것 같아. 한지를 요리조리 옮겨가며 맞추다가 마음에 들면 붙이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마치 버려진 돌이 모퉁이 돌이 되듯 작은 종이들도 버리지 않게 되거든. 사람들은 다들 이게 어려운 줄 아는데 난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 힘들지도 않고 그저 즐거워. 게다가 좋은 일도 생기는 걸. 요즘은 대금도 배워.

그 말을 하고 나서 그녀는 한없이 웃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입으로 “순진해서 큰 일인데…”라고 말해 놓고는 또 웃는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녀의 작품들은 온통 그녀의 웃음들로 그려진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이미지를 닮아 있었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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