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든 또 다른 공동체든 어느 순간 새로운 리더가 등장하는 시점을 맞으면 많은 변화들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요즘은 새 정부를 맞이하는 기간이라 변화의 소용돌이가 피부에 느껴질 듯합니다. 변화를 일으키는 중심에 선 사람들의 마음은 큰 기대감에 부풀어 당장에 큰 결실을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할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 우리들이 자주 떠올리는 잠언 같은 글이 있습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한 주교의 비문입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의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가장 먼저 변화시켰어야 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음을.”


왜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서서야 이 위대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일까요? 동양에서도 오래 전 <대학>의 경구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가르침을 배워왔지만 여전히 수신의 가치를 평천하의 가치만큼 중시하지 않음으로써 짧은 인생을 후회로 마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수신과 제가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으며, 수신과 평천하의 경계도 흐릿한 법이지요. 그것을 순차적으로 보아서도 안 되겠지요. 나를 변화시키는 일과 가정을 변화시키는 일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서로가 영향을 미치는 관계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성당의 저 비문의 속뜻도 ‘나를 변화시키는 일’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보다 낮게 여기고 산 데 대한 후회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새 정부의 일꾼들이 수신과 제가와 치국과 평천하의 소중한 가치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소홀히 여기지 않기를, 그리고 평천하의 길과 수신의 길 또한 서로 어긋나지 않음을 늘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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