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전도사 윤종하 선생 통해 QT생활 시작해 나중엔 QT책자 만드는 자리까지 이르러

그때 내가 들은 강의 제목은 ‘샤머니즘과 기독교’였고, 강사는 머리를 거의 빡빡 짧게 자른 40대 평신도였다. 1980년대 초반엔 정국이 어수선해 휴교가 잦았고, 당시 한창 성장세를 타고 있던 대학부에 다니던 우리는 덕분에(?) 자주 수련회를 가질 수 있었고, 제법 뜨거운 영적 각성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 수련회에 온 강사들은 대부분 젊은 날의 회개와 헌신을 말하면서 뜨겁게 불을 지르곤 했는데, 그 양반은 전혀 아니었다. 목사님도 아닌 분이, 헤어스타일은 짧은 스포츠머리에 강의는 한국 기독교에 스며든 샤머니즘을 경계하라며 어떻게 보면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으니.
이번엔 이상한 강사를 모셨다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 양반 말씀이 틀린 게 없었다. 기복신앙과 결합된 한국교회의 미신적 요소들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참된 복음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을 때 이내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 말미에 그 양반은 작은 책 하나를 소개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향해 어떤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신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루하루를 살기 원하는 이들이라면 매일 이 책을 한 장씩 읽고 묵상하면 좋다고 했다. 영어권의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에 자극 받아 그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좋긴 했지만 쉽진 않았다. 몇 달을 하니까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았고, 매일 첫 아침을 그렇게 시작하는 게 서서히 몸에 배어 습관이 된 지도 25년이 넘었다. 물론 그 동안 이 책으로도 해 보고 저 책으로도 해 보고, 몇 년 전부터는 이런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양반의 강의를 듣지 못했더라면 매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이 소중한 습관을 기르지 못했을 것이고, 내 신앙도 알게 모르게 기복적인 흐름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전통적인 매삼주오(每三主五 · 매일 세 장, 주일엔 다섯 장을 읽으면 1년에 성경을 한 번 읽는다는 의미로 쓰이던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 가운데 하나)에 익숙했지, 하루에 열 구절 안팎을 묵상하는 QT란 말이 생경하게만 들리던 그 시절, 그 양반이 소개한 책은 QT교재의 효시 격인 <매일성경>이었고, 그분은 성서유니온 총무로 일하던 윤종하 선생이었다. 이후 선생의 성경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비로소 천당(天堂)만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Kingdom) 개념에 눈을 뜨면서 피상적으로 알아왔던 구원론과 교회론을 새롭게 알아가기 시작했다.
신학교를 나오지 않은 아웃사이더였던 선생의 가르침은 당시 교회 일반이 알아왔던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때론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탁월한 성경교사였던 선생의 가르침은 몇 권의 책과 강의 테이프를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인정받기 시작해, 10여 년 전부터 QT를 모르는 신자들이 별로 없고(하든지 안 하든지),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 받는 삶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그렇게 살든지 안 살든지).


서재석

(대학 청년들을 위한 기관 ‘Young2080’의 부대표이고 월간 <QTzine>의 편집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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