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명도 버려지지 않는다

내가 만난 그리스도인

어떤 생명도 버려지지 않는다
비탈거미처럼 자신을 먹이로 내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인생의 하찮은 불평이 부끄러워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한려수도를 펼쳐내는 복잡한 남해 언저리에 외롭게 떠 있는 섬 거문도, 그곳에서 80 노모의 눈물겨운 수발을 받으며 지내는 60 넘은 아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조경백, 그는 두 평짜리 비좁은 방에서 몸을 한 치도 가누지 못한 채 40년 이상을 누워 지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매어 있는 사랑의 볼모일까? 누구도 상대를 포기하지 못한 채 살아온 세월은 어찌 보면 기한 없는 형벌이고 인고의 슬픔이다.
16살 아들이 류마티스 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부터 어머니 이춘덕 집사는 아들에게 ‘꽁꽁 묶이게’ 되었다. 류마티스 성 관절염은 병균을 막아야 할 항체가 제 몸의 관절세포를 나쁜 세균으로 인식해 공격하고 파괴하는 질병이다. 엉덩이뼈와 다리뼈를 잇는 고관절에 처음 증세가 나타난 아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반년쯤 누워 있다 일어났지만 3년 뒤 더 심하게 재발했고, 이후 병마는 계속 퍼져서 지금은 목 아래 모든 뼈마디가 오그라들고 비틀어진 채 굳어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언젠가 떡방아에 머리를 부딪혀, 지금까지도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어머니를 괴롭히는 두통 때문에 어머닌 약도 소용없다며 늘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46년을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아들 역시 전신마비로 46년 동안 문밖을 나서보지 못하였다. 반평생이다. “진작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한국전쟁이 막 끝날 무렵, 이씨 부부는 “끼니 때울 일을 걱정해야 할”만큼 가난하였고, 1000km 남짓 떨어진 여수항까지 다니는 여객선도 없던 때여서 아들 치료에 도저히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이제 아들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대나무 꼬챙이를 움직여 공중에 매달아 놓은 성경을 보는 일이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장을 넘기는 데 더 오래 시간이 걸리는 아들. 그래도 조경백 씨는 신구약 성경을 여덟 번이나 읽었다. 요즘은 하루에 20장씩 성경을 읽으며 보낸다.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는 어머니는 아들을 먼저 걱정한다. 방 한 켠에 덩그마니 놓여 있는 아들의 육신은 이춘덕 집사에게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전체의 무게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어머니는 그 무게를 능히 지고도 아무런 불평과 탄식이 없다. 세상에 진정한 강자가 있다면, 바로 이런 어머니가 아닐까? 이 어머니의 사랑을 무너뜨리게 할 것이라고는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어떤 좌절스러운 현실이 맞닥뜨린다 해도 어머니는 그러한 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는 당신 것보다 먼저 아들의 수의를 마련해 놓으셨다. 당신께서 먼저 가면 돌봐줄 이 없는 아들 생각만 하면 어머니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나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어머닌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어머니의 마음이 아들의 마음일까. “어머니가 먼저 가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건장하고 활기 넘치는 시기를 보냈어야 했을 그는 이 병마의 시련 속에서 40년의 광야생활을 통과한다. 누구도 그의 삶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지팡이 하나를 갖고 하나님에 의존해서 홍해를 가르고 바위의 물을 낸 모세와 다를 바 없이 오로지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인생을 살아낸다. 그의 광야의 삶은 처절했고 그 처절함이 그를 성서와 신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 육신의 지독한 질고가 끝나는 날, 그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유일한 소망으로 견디고 있다. 그런데 그 견딤은 좌절의 종점에서 피할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견딤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85세의 늙은 어머니 이춘복 집사의 사랑과 헌신의 삶이다.
이들 두 노모자의 모습은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밝고 편안했다. 이들에게는 세상이 모르는 평안이 있었다. 세상은 이들의 삶을 외면하고 소외시켰지만, 이들 노모자는 그 소외의 섬, 끝자락에서 생명의 시간을 일구어내고 있다고 할까? 아파하는 자의 삶의 자리에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고난은 이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의 실마리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렇게 말하기는 쉬워 보여도 얼마나 간단치 않은 일인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들 노모자에게 이토록 견디기 쉽지 않은 시련을 주신 것일까? 그리고 이분들의 삶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이들 자신에게 이 고통은 설명될 수 없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주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실로, 온전한 육신을 지니고 있어도 그 영혼이 병들고 하나님 나라와는 인연이 없이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들에게 이들 두 노모자는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하나님의 사자(使者)이다. 그 어떤 생명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버림받지 않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들의 삶이 이 절망과 좌절의 시대에 희망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게 하는 힘이 되는 이유다. 하여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의 외면과 방치 가운데 외딴 섬에 갇혀 지내는 상황일지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평안의 힘을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신앙에서 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거문도의 밤은 바닷바람이 차가웠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은혜에 끝까지 의지하는 이들 두 모자의 존재로 하여 마치 별이 빛나는 느낌이었다. 아, 누가 인생에서 실망할 것인가? 아, 누가 자신의 삶을 저주할 것인가? 거문도에 가보라. 거기에선 하나님께서 결코 놓지 않으시는 사랑의 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끈에 매어 있는 배는 인생 어디에서도 표류하지 않을 것을…….

한종호

목사이며 <기독교사상>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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