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대선 여론조사 10문 10답

1960년대 프랑스 정치에 여론조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을 때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여론조사의 세 가지 전제를 언급하였다. 그것은 여론조사는 ① 모든 사람이 의견을 갖고 있다 ② 모든 의견이 똑같은 무게를 갖고 있다 ③ 물을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에 관한 동의가 이루어졌다 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릇된 전제이므로 엄밀히 말해 “여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오늘에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여론 민주주의’를 위한 한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투표 6일 전부터는 언론의 선거 여론조사 보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한국처럼 최소한의 규제를 가하는 나라들도 있지만, 규제가 없는 나라들이 더 많을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론조사 결과의 영향력은 그 어느 나라보다 파격적이다. 따라서 오용 남용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는 여론조사들의 날갯짓을 바라보며 어떻게 수용하고 대응해야 할지 10문 10답 형태로 구성했다.
편집자 주

01. 신뢰도 95%에 오차범위 ±2.5%, 이게 뭐에요?
▶ 예를 들어 A와 B의 대통령선거 여론조사에서 A가 B를 이기는 걸로 조사가 나왔는데 신뢰도를 95%로 한 조사라면 여론조사가 아닌 실제선거결과에서 A가 B를 이길 확률이 95%란 뜻입니다. 그러나 5%는 부정확하단 뜻이죠. 이 5%는 +2.5%와 -2.5%로 나누는데 이를 오차범위 즉 조사가 틀릴 수 있는 확률을 나타냅니다. 이를테면 만약 여론조사에서 A지지도 51%, B지지도 49%라고 나온다면 A가 실제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B보다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차범위란 이럴 때 의미가 있죠. A지지도 51%, B지지도 49%라면 둘의 차이는 +2%죠? A지지도 49%, B지지도 51%라면 둘 차이는 -2%죠? 이 두 경우는 모두 오차범위 안에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라면 조사결과를 신뢰할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02. 대한민국은 ‘여론조사공화국’이다, 할 정도로 여론조사의 권력이 막강합니다. 대체 어느 정도인가요?
▶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여론조사가 매우 유용한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고 정치권이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여론조사가 주권자인 국민을 존중하는 정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대선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여론조사에 의해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될 정도로 여론조사의 힘은 막강하다. 다시 말해 당원들의 선택과 어긋나더라도 여론조사결과에 따라 ‘당심’을 억누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하였고, 이번 대선에서는 한나라당과 통합신당 등이 여론조사로 대선후보를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당 책임정치를 강조하는 정당정치체제에서 당의 근간인 당원들을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높답니다.

03. 정당 내에서 여론조사로 후보자를 선출했는데….
▶ 여론조사를 아무리 과학적 윤리적으로 한다 해도 여론조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대표적 사례가 정당 내 여론조사 경선이다. 당원들이 해야 하는 후보 선출에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것은 정당정치를 포기한 얄팍한 포퓰리즘이라는 지적, 지금 같은 정당의 후보 선출 방식은 여론조사의 본질을 모르는 ‘조사 문맹’(Research Illiteracy) 현상이라는 지적, 누구든 지지율만 높으면 된다는 풍조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란 지적 등이 있다. 특히 당 후보를 여론조사로 뽑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대만뿐이며, 여야는 여론조사를 여론조사 본연의 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 되고 있다.

04. 실패한 여론조사들을 알려주세요.
▶ 미국의 경우 몇 가지 유명한 치욕적 실패 사례들이 전해져 옵니다. 첫 번째 치욕은 1936년 <리터러리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라는 잡지가 당시 공화당의 랜든 후보가 민주당의 루스벨트를 누르고 당선될 것으로 보도하였으나 그 경과는 반대였고, 이 잡지는 얼마 있다 문을 닫고 말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1948년 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갤럽 등 여러 조사회사들은 듀이 후보가 트루만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될 것으로 예측하였고, <시카고 트리뷴> 등 많은 언론이 이를 인용해 보도하였다가 결과적으로 커다란 오보를 내고 말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12년 동안 미국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05.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할 수도 있나요?
▶ 조사 방법과 조사대상 그리고 조사시기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는 현격히 달라집니다. 표본추출과정, 설문의 설계, 설문의 방법, 응답률, 표준편차, 신뢰수준 등에서 똑같은 여론조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이런 변수들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결과를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선 여론조사처럼 많은 기관들이 언론사와 공동으로 경쟁하는 경우 조작의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기업 등이 여론조사 결과를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지요.

06. 대선 여론조사는 오히려 인지도가 높은 후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2002년 대선의 경우를 사례로 들어봅시다. 인지도가 곧 지지도로 그리고 대세론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많이 나왔습니다. 여론조사결과 발표가 무소속이나 신인들에게는 초반부터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시민들에게 지지하는 후보를 물을게 아니라 원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어떤 자질을 가진 후보자를 원하는지를 물어봐야 한다고 봅니다. 또 언론의 영향력이 커진 바람에 언론이 판세기사를 싣고, 그것을 후보자가 악용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07. 여론조사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은 없을까?
▶ 우리나라 여론조사기관의 수준은 비교적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대표성을 가진 표본을 추출하는 데 대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야 합니다. 또 전화조사에서 낮 시간에는 전체 표본의 35% 정도만 조사하고 나머지는 밤에 조사하는 ‘시간균형 할당’을 하면 보다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전화조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유선전화와 아울러 휴대전화, 인터넷 등 대안적 방법을 병행하는 것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지요. 시간과 비용이 더 필요하겠지만 조사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선 적절한 수준의 재통화도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예전에 비해 여론조사가 지나치게 많이 행해지고 있어, 응답자의 거절률이 높아지고 응답자의 적극성도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08. 여론조사를 읽는 독자들이 유의해서 봐야 할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
▶ 여론조사는 주로 특정 이슈에 대한 찬반에 초점을 맞춰서 조사를 하기 때문에 사회적 쟁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또 조사배경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요구됩니다. 독자들도 최소한의 방법론적 소양을 가지고 조사결과를 균형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 여론조사에 나를 맞추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의 의견을 견지하는 도구로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09. 우리나라의 여론 형성과정이 갖는 독특한 측면은 없을까?
▶ 우리나라의 경우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지지하는 현상이 짙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각 개인의 신념 구조나 그 어떤 사실적 기반에 의해 형성된 여론이 아니어서 불안정하고 금방 증발되기 쉽지요. 또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강해 정치적 지지는 지지 대상에 대한 ‘포지티브’ 심리보다 반대 대상에 대한 ‘네거티브’ 심리에 의해 여론이 형성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밖에도 정당정치의 기반이 부실해서 일관성이 약하며, 인물 중심주의 문화가 강해 그 인물과 함께 떴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기에 지역주의적 성향이 나타나고, 드라마나 ·이벤트에 약한 감성적 성향이 크게 나타납니다. 또 바람에 약하여 여론에 대한 성찰을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지요.

10. 여론조사 기능이 교회에도 도입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 교회 내에서도 여론조사를 통해 성도의 필요를 파악할 수 있고, 밖으로는 불신자들의 생각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교회를 개척하거나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이벤트를 계획할 때 여론조사를 통해 적절하고도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예산 낭비는 물론 교회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악용될 소지를 갖고 있음을 늘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정리=박명철 기자
도움말씀 주신 분들=지용근(글로벌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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