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

탈출기를 그린 작품
영화 <모가디슈>를 보다 보면,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상황이 오버랩 됩니다. 기존 아프간 정부가 무너지고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한국대사관 직원을 비롯해 교민과 한국 정부의 협력사업에 함께했던 현지인들을 국내로 이송했습니다. 군사작전처럼 급박하게 진행되었던 이 탈출 과정은 차후에 아마도 영화적 소재가 되겠지요. 이미 우린 그런 걸 많이 봐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특파원에 협력했던 캄보디아 기자의 탈출기를 그린 <킬링필드>라는 영화가 80년대 초반에 나왔죠. 8년 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아르고>는 이란주재 미국대사관 직원들의 탈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타국의 비극적 상황이 미디어나 오락, 혹은 가십의 소재 정도로 소비되는 건 분명 쓸쓸합니다. 이방인의 시선과 현지 시선이 잘 조화를 이루면 좋겠으나, 타국인에 의해서 그려지는 현지의 모습이 균형감까지 갖추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라면 모르겠지만, 오락적 흡입력을 가져야 하는 상업 영화는 분명한 그림이 있어야 하기에 하나의 정치적 노선을 선택해야 하고, 묘사에 있어서 생략과 과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현지 사회의 몰락에 더해 타락까지 집어넣는 건 거의 전형적인 공식에 가깝습니다. 물론 <모가디슈> 또한 그러한 자장 안에 있습니다.

신파 없이 비극을 들여다보다
UN 가입을 위해 남북한이 외교전을 펼치던 1991년, 인도양 연안의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남북한이 서로 맞붙은 장면으로 영화 <모가디슈>는 시작합니다. 소말리아 정부 관료는 남북 대사 사이를 오가며 사적인 잇속만 채우는데, 부패한 소말리아 정부는 이내 무너지고 모가디슈는 반군에 의해 점령당합니다. 이제 남북 대사는 서로 도와가며 탈출을 감행하지요.

<모가디슈>는 사방에서 총알이 쏟아지는 그 아비규환의 현장으로부터 남북대사관 직원들이 탈출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그 묘사가 너무 매끄럽고 스케일이 커,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스펙터클한 장면들도 있습니다. 세련됨은 없고, 등장인물들의 영어 실력만큼 영화 내내 투박하기만 해요. 그 투박함을 영화는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마지막엔 대개 신파로 넘어가기 마련인데, 영화는 그런 걸 생략하고 거칠게 마무리합니다.

아련한 여운을 뒤로하고 냉정하게 돌아서요. 바로 그 지점에 이 영화가 지향하고 있는 바가 담겨있습니다. 갈등을 가벼운 화해로 푸는 한계에 대한 재고, 특히나 남북한 문제를 낭만적으로 접근할 수 없을 거라는 현실적 인식이 들어가 있어요. 서로를 위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를 위해서 사는 거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정답’을 내리지 않고, 하나의 ‘해답’을 보여줬다는 점이 영화 <모가디슈>의 미덕입니다. 마치, 함께 계속 고민해나가자고 제안하는 거 같아요.

고통을 대하는 무뎌진 감각
영화는 이런 남북 휴먼스토리를 풀면서, 소말리아라는 타국의 비극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2003년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이란 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녀는 남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즐겨왔던 반이성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어요. 우린 그저 연민만 보내는 방관의 문화에서 벗어나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선 무뎌진 감각을 복원해야 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익숙해진) 남북분단의 비극과 마찬가지로 소말리아의 불행 또한 현재 진행형이거든요. 모든 문제 해결의 첫발은 무감각함과 익숙함의 탈출로부터 시작되는 법입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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