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전범선 지음, 한겨레출판, 2020년

오래전에 <슬로 라이프>(쓰지 신이치 저)라는 책에서 아래와 같은 일본 에도 시대의 우스갯소리를 읽은 적이 있다.
노인 : 젊음이란 게 뭐겠어, 벌떡 일어나서 얼른 일을 하라구!
젊은이 : 일을 하면 어찌 되나요?
노인 : 일을 하면 돈을 벌게 되잖아!
젊은이 : 돈을 벌면 어찌 되나요?
노인 : 부자가 되지!
젊은이 : 부자가 되면 어찌 되는데요?
노인 : 부자가 되면 놀면서 지낼 수 있지!
젊은이 : 저는 벌써 놀면서 지내는 걸요!


한참이 지났는데도, 나는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위 이야기를 한 번쯤은 떠올린다. 젊은이의 입장으로 보면 예를 들어 행복처럼 삶의 중요한 목표에 도달하는 데는 참으로 여러 방법이 있고, 따라서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현명하게 접근해야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노인의 입장으로 보면 삶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는 일은 평생에 걸쳐 공부해도 쉽지 않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똑같이 논다는데 초점을 맞추었지만 젊은이와 노인이 말하는 의미의 깊이감은 분명히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는 양립하기 어려운 노인의 입장과 젊은이의 입장을 둘 다 챙기면서 자유롭게 살아보겠다는 저자의 과감한 도전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트머스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저자는 국제법 변호사가 되기보다는 글을 쓰고 노래하는 삶을 택한다. 그리고 보장된 미래 대신 폐업 위기에 처한 책방을 인수해 출판업에 뛰어든다. 나는 에도 시대 젊은이가 되어 질문한다. “범선 씨, 결국 가수가 될 거였다면 음악을 더 열심히 하고, 결국 작가가 될 거였다면 글쓰기를 더 열심히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이에 범선 씨는 에도 시대 노인이 되어 대답한다. “살면서 배우는 모든 것을 공부라고 정의한다면, 저는 공부하면서 배운 것들을 제 인생에서 실천하고 싶어요. 10년 뒤 ‘친구들처럼 변호사를 할 걸’하고 후회하게 되더라도 말이지요.”

그가 실천하는 라이프스타일 가운데 중요한 가치는 바로 채식이다. 채식은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고, 어린이, 노인, 장애인뿐만 아니라 심지어 감금과 도살의 고통에 내몰려 있는 동물들조차 외면하지 않겠다는 신념의 차원이기도 하다.
팬심이 발동해 나도 외식할 때만이라도 굳이 고기를 사 먹지는 말아야겠다고 하던 찰나 장모님이 “길 건너 삼계탕집 가봤어? 그 집 마당에서 키우는 토종닭이 얼마나 튼실하고 예쁜지 몰라. 아이들이랑 같이 가자.” 하신다.
신념과 행동의 부조화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덧붙인 전범선의 말이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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