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감동산책-자연이 주는 위로

어려운 시간을 지날 때 어떻게 위로를 얻으세요?
어두운 날들을 거쳐야 할 때 우리는 ‘상처를 아는 분’의 말과 글에서 힘을 얻고, 신앙인들은 무엇보다 말씀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그러나 사이사이 나타나는 회색빛 여백은 시간 속에서 자신이 해결해야 할 몫이지요.
자연~초록의 숲이나, 잠깐 앉아 쉴 수 있는 아파트 마당에서 나무와 구름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독여 본 적이 있는지요. 자연은, 사람이 만든 각진 물체들과 달리 ‘자유로운 곡선’과 ‘고유한 색’으로 우리를 부드럽게 해줍니다. 그러면서 나무는 그 자리에서 말하지요.

‘조용히 나를 봐봐. 삶은 쉽지 않아. 그러나 어렵지도 않아. 백번이나 잘린 가지들에서 그저 참을성 있게 새 잎사귀를 내놓는 거야. 온갖 아픔에도 다시 사랑하는 거야.’(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에서)

그렇습니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녀 긴 호흡으로 지혜로운 생각을 말합니다. 자연의 맑은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거짓과 허세, 겁쟁이인 모습을 느끼게 돼죠. 도시가 성급하다면 나무는 느림의 기념물처럼 우뚝 서 자기의 일을 하는 존재라 그런가 봅니다. 가장 힘들고도 배울 가치가 있는 ‘참을성’을 예전에 실버 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잘 읽지 않았던가요. 아이들에게 놀이가 되어주다 그늘로 품어주고, 열매도 주다가 재목이 되어준 나무 이야기 말입니다.

나이테에는 잘 새겨진 나무의 증언이 있습니다. 넓은 나이테는 행복했던 해, 물과 영양이 풍부했음을 말하며, 가뭄이나 한파를 겪은 해엔 생장할 에너지가 많지 않아 좁은 나이테를 갖거나 건너뛰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힘을 다해 본연의 법칙, 씨앗의 비밀을 살아내며 창조의 질서를 이어가지요. 이런 모습을 보며 헤르만 헤세는 강하고 아름다운 나무보다 더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자신의 할 일, 자신의 형태를 표현하는 일에 힘쓰는 나무이기에 그토록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가 봅니다.
베토벤은 ‘나무와 풀과 돌이 있는 길을 걸을 때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라며 사시사철 숲길을 걷는 중에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곡을 쓰다가 막힐 때는 언제나 다시 찾았다는 숲길~ 그런 곳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연을 사랑, ‘페터 카멘친트’
<페터 카멘친트>는 헤르만 헤세를 세상에 알린 소설입니다. 그는 이 작품 속 소년의 입을 통해 자연을 ‘언제나 들어주고 말하고 붙잡아주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늘 제 자리를 지키는 산맥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인간의 욕망을 표상하는 구름을 대비해 표현합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풍요로우나, 회피할 수 없이 냉정하다고요. 그러면서 어머니도, 사랑도, 친구도 지나가나, 자연만큼은 그 자리에 남아 들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존재였다고 그 위로와 여운을 말합니다.
평안을 주는 생명의 색인 녹색, 아름다우며 무한한 세계에 대한 경외를 갖게 하는 푸른색, 안정감을 주는 갈색과 희망을 품게 하는 흰색이 어우러진 산과 나무, 하늘과 구름, 바다와 파도를 바라보면, 좀 더 관대해져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마음의 다짐이 뇌에 전달되고 변화를 일으켜 실제로 달라지게 만든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만 관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효과를 나타내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탐색하게도 한다니 자연이 주는 너그러운 마음은 참 귀합니다. 잘하고 싶은 일에 자신을 과도하게 검열해, 잘하지 못하는 일이 되게 할 수도 있음도 알게 하니까요.

자연을 가까이 여기는 부류가 따로 있을까
아는 만큼 보이고 배울 수 있다는 공식이 여기도 적용되어, 관심을 가질 때 많은 것을 얻게 되고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바닷가에 갔을 때 거기서 나는 냄새를 좋아한다면,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 질문해보는 겁니다. 그것은 플랑크톤과 해초가 분해되면서 만들어지는 특유한 냄새로, 맛있는 김과 게의 핵심 냄새라는 것. 이 냄새를 따라 바닷새와 모든 해양 생물들이 따라다니며 자신도 그렇게 바다 내음에 끌린 것을 알게 되며 즐거워집니다.

또 하나, 숲에서 나는 버섯 향을 알아가는 겁니다. 최고의 음식 재료로 꼽히는 버섯의 향이 보통 사람들이 피하려 하는 황 화합물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황화수소의 냄새는 진하면 썩은 달걀이나 스컹크 냄새로 나타난다는데, 황의 농도가 적당히 약하면 송로버섯을 비롯한 참기름, 커피, 고기 굽는 냄새로 난다니 놀랄 일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장점이나 단점도 농도의 차이라는 깨달음을 가지며 자연을 보게 되는 시점입니다.

이 밖에 개미들을 보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기억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작지만 지혜로운 존재, 그 작은 뇌에서 미래를 대비하면서, 조직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계급 경쟁을 한다는 점들을 연결해 관찰하는 거지요. 그러면서 ‘자신을 대단히 여겨 우쭐하며, 연약하고 작은 것들을 무시했거든, 손으로 입을 막고 반성하라.’는 성경말씀도 기억해 봅니다.

왜 자연을 통해 위로가 올까요
자연은 창조의 모습에 가까운 존재들로, 그저 그 속에만 있어도 힐링을 주는 선물인 듯합니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매슬로는 ‘아름다운 자연에서 얻는 경험은 심리적 건강을 가져온다.’ 하며, 자연은 모르는 사이 너그러움, 관대함을 갖게 해 타인을 보는 견해를 넓히며 관계를 성장시킨다고 말합니다. 일상 속 답답함과 삶의 어려운 시간을 풀어줄 조용한 대안이라 할 수 있겠지요.
특히 아주 힘든 일을 겪으면 시야가 좁아지고 모든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자연은 그 힘을 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입되어 우울한 상태가 깊어질 때, 자연 속에서 새로운 면을 알아가면 자신에게 매달린 모습을 벗어나며 작은 즐거움과 함께 창의성도 얻게 된다니 얼마나 유익한지요.
한 그루의 나무가 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베토벤처럼 자신을 고독하게 해 고유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 안에 핵심이 있고 불꽃이 있어 천천히 자신만의 세계를 이뤄갈 삶 말입니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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