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고립청년 돕는 ‘리커버리센터’ 이야기

은둔형 외톨이를 아시나요?
사회적 고립청년을 이르는 말, ‘은둔형 외톨이’. 외톨이라는 말만 떠올려도 서글픈데, 게다가 은둔이라니. 그렇게 자신의 몸을 숨기고 사는 청년들이 2019년 기준(19~39세) 국내에 약 13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대 30만 명으로 추정하며 코로나로 인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학교폭력, 부모의 학대나 방임, 열등감 등 다양한 이유로 방문을 닫고 들어간 이들은 무력감과 불안, 수치심 등으로 괴로워하며 문 밖으로 나서지 못한다. 10대 때 은둔을 시작해 20, 30대가 되도록 고립생활을 하는 청년들도 많다. 친구도 없고, 밤낮을 바꿔 살아서 가족과도 마주치지 않으며, 학업도 중단하고 경력도 없다. 건강 역시 빨간불이다. 정서적으로나 정신적, 신체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전문가들은 혼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회문제로 보고 사회 시스템 안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그러나 아직 한국사회에는 사회 인식과 대응이 모두 부족하다.

회복과 성장 위한 리커버리센터
이러한 가운데 이 청년들의 회복을 지원하며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 ‘리커버리센터’(센터장 김옥란)가 서울 성북구에 위치하고 있다. 2015년 거주지가 필요한 도시빈민 청년들과 함께 사는 그룹홈 ‘나들목 바나바하우스’가 모태가 되었는데, 함께 살아보니 사는 것 외에도 학습과 훈련이 있어야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련한 것이다.
“‘고립에서 자립으로, 자립에서 공생으로’ 취지 아래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놀고, 함께 일한다’가 모토입니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청년들은 자연스레 소속감, 갈등해결, 상호 돌봄, 책임감, 리더십 등을 배우며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갑니다.”
본격적으로 센터를 시작한 것은 2019년. 그때부터 자활 상담, 개개인의 상황과 취약점, 필요에 따른 개별적 맞춤 회복계획(시간, 재정, 건강, 관계, 진로) ‘개별 회복 로드맵’ 등을 요리, 미술, 글쓰기, 음악, 야구단, 봉사활동 등을 통해 도왔다. 결과는 놀라웠다. 청년들이 자립을 시작하게 된 것. 또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버스 기사 등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기도 했다.
“자기가 고립되었던 공간에 있으면 안 됩니다. 일단 분갈이 하듯이 환경을 완전히 바꿔줘야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함께 항해하기
센터에서 사회적 고립청년을 부르는 명칭은 ‘크루’(crew)이다. 삶의 길을 찾아가는 청년들이 마치 한 배를 타고 항해를 나선 선원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멘토이자 리더, 회복파트너인 리커버리 코치가 1대 6 비율로 구성되어 크루들을 돕는다.
지금은 3기 크루 15명이 1년 커리큘럼 안에서 주말을 제외한 매일 아침 10시부터 6시까지 함께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15명의 청년들은 바나바하우스에서 기숙생활을 하거나 통학을 하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을 위해 재단법인 청년재단이 10명의 청년들에게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있다.
“적어도 10년 이상 고립된 생활을 해왔던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은둔이 몇 년씩 이어지면 현실감이 떨어지고 뇌 활동 저하로 인지 능력도 떨어지는 등 퇴행하게 되지요. 그래서 회복과정을 여러 측면에서 도와야 해요. 함께 규칙을 만들어 지켜나가고 자신 안에 있는 귀하고 소중한 가치들을 찾아나가지요.”
아침에 오자마자 짝을 이루어 성북천 산책을 하며, 주제에 따라 대화를 나누게 한다. 이어지는 ‘기지개 모임’은 자신의 감정에 점수를 매기고 그것을 표현하는 시간을 크루들과 갖는 것.
“감정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눌러두기만 했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표현하고, 다른 크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하고 위로하는 그 시간에 회복이 일어납니다. ‘자기’가 없었던 청년들이 자기를 찾고, 나아가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돌보게 되지요. 물론 갈등도 일어나지만 안전한 장소에서 갈등 해결 하는 것을 마음껏 연습하고 나가니 이전에 회피로 일관하던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 다루는 사람이 됩니다.”
함께 밥을 만들어 먹는 쿠킹 런치, 주 1회 리커버리 야구단 활동도 하게 된다. 야구단은 자립해서 나간 청년까지 포함해 ‘51:49 리그’ 경기를 월 2~3회 소화하는데, 헐크파운데이션 이만수 이사장과 야구선수 출신 지도자들의 재능기부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센터를 준비하기 위해 미국 시애틀로 연수를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빌리지 리그라는 걸 보게 되었어요. 마약중독자 팀, 노숙자 팀 등 취약계층들이 참여하는 사회인 야구 리그로 사회에서 고립된 이들과 건강한 사람들이 하나의 리그에서 만나 야구로 하나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더군요. 그래서 센터를 만들기 전에 야구단부터 시작했어요. 여기에 사회인 야구단들이 회복을 위해 함께 해주고 계세요.”
지역사회 협력으로 일 경험 지원뿐 아니라 또한 전문 예술인들로 이루어진 리커버리 예술단(영화 미술 음악)과 여러 작업을 통해 영화 제작, 전시회, 퍼포먼스 등을 하며 자존감 회복과 삶의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다.

처음으로 가보면
어린이들이 하는 놀이 중 ‘숫자 점선 잇기’가 있다. 숫자가 달려있는 점들을 순서대로 선을 이으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그림이 점점 완성되는 것. 처음에는 그저 작은 점들에 불과하지만 단 한 개의 점도 이유 없이 찍혀 있는 것은 없다. 리커버리센터도 이런 일련의 점들이 이어진 결과다. 시작점은 어디에서부터였을까.
1998년 부천에서 신문보급소를 운영하던 김현일 씨는 새벽 2시 일을 마치고 보급소에 들어서자 깜짝 놀랄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왜소한 체구의 한 소년이 보급소에 있는 밥과 반찬을 꺼내서 먹고 있었다. 무안할까봐 일부러 함께 밥을 먹으며 물었다. 위험하게 이런 시간에 왜 돌아다니냐고. 그랬더니 이렇게 말했다.
“집에 아무도 없어요.”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이며, 형들은 구치소에 가 있는 동안 14살 소년은 학교도 못 가고 방치되어 있었던 거다. 전기 수도 다 끊긴 집에서 노숙하듯 살다가 배가 고파 돌아다니던 중 마침 열려있던 보급소에 들어와 밥을 먹게 된 것.
“너 그러면 언제든지 밥 먹으러 와라.”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함께 살게 되었다. 비슷한 처지의 2명의 청년들과 김 씨의 가족까지 일곱 명이 한 집에 살기 시작했다. 그때의 보급소 운영자가 지금 나들목교회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운영하는 밥집 ‘바하밥집’의 김현일 대표(아름다운동행 181호 보도)이며, 어려운 살림에 두 딸 키우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남편과 함께 비좁은 집 한 켠을 내준 아내가 지금의 리커버리센터 김옥란 센터장이다.
서울로 와서도 그렇게 가족이 없고, 집이 없는 청년들과 함께 살았다. 그냥 사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자립을 해서 나갈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치고 가족의 모습으로 함께 해주었다. 그 점들이 모두 연결된 것이 지금의 리커버리센터인 것이다.

훨훨 날아오르게
리커버리예술단과 리커버리크루가 함께 한 ‘2020 리커버리센터 결과발표회 <어둠에서 빛으로>’. 한 해 동안 리커버리 크루들이 리커버리예술단의 창작놀이워크숍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쏟아내고, 표현해온 것들을 ‘움직임’과 ‘시나리오’로 엮어낸 퍼포먼스, 연극, 그리고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올라와있다. 올해는 전시회로 진행되는데 10월 20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촌 갤러리B에서 열릴 예정.
그동안의 아픔과 설움, 진짜 마음을 쏟아놓고 다음 스텝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뮤직비디오 <진짜의 진짜 마음> 노래 가사에 담겨 있었다.

궁금했다 아 - 주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나를 무력하게 하는지
기억했다 아 - 아 무튼 잊지 않으려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
무너지지 않으려 애썼지

아마도 우리는 진짜의 진짜 마음을
꺼내기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생각을 갈라보자
천천히 흐르면
훨훨 날아오르게


김옥란 센터장은 “은둔형 외톨이뿐 아니라 보호종료아동(아동복지법상 만 18세에 보육시설을 나가 자립해야 하는 청소년들을 통칭하는 말), 그리고 조현병과 같은 정신증을 갖고 있는 사회적 고립 청년 모두를 돕고 싶어요. 이는 노숙인 예방 사업이 되기도 합니다.
은둔 청년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려면 사회와의 접점을 늘리는 일이 효과적입니다. 실제 센터에 문의를 한 청년이나 가정 경우에도 기사나 동영상 등 사전 자료를 보고 나서 ‘저기 가면 나도 변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문 밖으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결국 지역마다 센터를 마련하거나 자조모임을 갖는다면 회복의 길에 나설 수 있는 청년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상처를 회복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돕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사회적 고립 청년을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대가 되는 청년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인식의 변화를 촉구했다.

취재를 마무리할 즈음, 센터에 한 여자청년이 찾아왔다.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바로 알아보고 반색하며 맞는다. 과정을 마친 청년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오랜만에 인사를 하러 들린 것. 처음 본 기자가 낯설었을 텐데, 그녀는 불편함 없이 활짝 웃으며,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눈다. 센터의 ‘품’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모습은 구김이 없이 맑고 밝아 보였다.

문의 : www.the-recoverycenter.org 리커버리센터 02)6494-2030
후원계좌 : KB국민 343601-04-134119 (재)한빛누리(리커버리센터)
하나 221-910013-95104 (리커버리센터)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