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버리 크루들과 함께한 ‘글쓰기’의 경험

근무 중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로 생긴 리커버리센터 청년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줄 수 있느냐고. 당시 바쁜 업무로 몸과 마음이 지쳤던 때였지만 만나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온 청년들을. SNS에 올린 글들을 다시 보니 지난 1년 반은 그야말로 선물의 시간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글쓰기 친구들. 사각사각 움직이는 손, 생각을 정리하며 펜을 쥐고 있는 손. 자기만의 표현으로 수줍게 말하던 얼굴들. 각자 품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내가 몰랐던 삶의 경이를 느끼게 해준 고마운 벗들._19.11.11

첫 만남부터 삶의 경이를 느꼈나보다. 함께 시를 읽고 자기 시를 써보라고 했을 때 그들이 써낸 시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자기만의 언어로 지은 집과 같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언니에 대한 칭찬의 말’을 읽고 누군가를 칭찬하는 시를 함께 썼을 때. 오은의 시 ‘1년’을 따라 각자의 ‘1년’을 돌아보는 시를 썼을 때 그들이 써낸 시어는 솔직했고 새로웠다.

사람 마음도 전쟁터라는 진실. 빨려 들어갈 듯한 눈빛으로 질문을 던지는 절박한 이들을 두고 어떻게 바로 자리를 뜰 수가 있어. 집중력, 에너지, 지성과 통찰 다 쏟았다. 오로지 감정 하나만 빼고. 진짜 수업은, 수업 끝나고 이루어짐. 지하철에서 떡실신 되어 오늘 아침까지 퀭-. 하지만 실장님이 전해준 소식 듣고 살짝 눈물이 나옴. 누군가가 그 시간을 통해 마음이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렇게 기쁘구나.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선하고 거룩한 에너지 쟁여두는 시간이 꼭 필요한 이유다._20.9.15

직장인에게 일주일의 휴일 하루는 소중하다. 그 하루 중 한나절을 쓰고 너무 피곤해 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반대로 탔던 날. 그날은 함께 책 <밀양을 살다>에 대해 내가 쓴 글을 읽고 나눈 날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계속 세상의 어두움에 대해, 그들이 경험한 ‘악’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그들을 두고 피곤하다고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한 시간을 더 이야기했다. ‘악’의 힘이 세 보이지만 그보다 ‘선’의 힘이 더 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날.

리커버리센터 가는 길, 성북천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보며 크루들을 떠올렸다.

내가 뭐라고 이들의 소중한 고백을 읽는 특권을 누리는 것인지. 격주 화요일, 크루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망연해진다. 내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그 삶의 기억을 덤덤히 풀어내는 젊은 그들 때문에. 지난 한 해를 표현하는 시를 써낸 여섯 편의 글 앞에서 난 보탤 말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말 그대로 예술가였으므로. 예술가들에게 뭘 가르친단 말인가. 그냥 표현할 주제만 정해줄 뿐. 나도 한 명의 참여자로 그들에게 감탄하며 시간을 보내줄 뿐. _21.5.4

지난달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본 한 크루가 “자신과 똑같이 나락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친 노력이 어느새 자신도 나락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도울 수 있다면 삶의 의미 정도는 찾은게 아닐까.”라고 써낸 문장을 내내 가슴에 담아두기도 했다. 글쓰기로 누구보다 자기 삶의 길을 정확히 찾아가고 있는 이들, 날 흔들어 깨우는 고마운 벗들이다.

박혜은
질문하는 사람. 책과 사람 잇는 일을 재미있어 하는 사람. 사회과학을 전공했으나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운동/연구한 이력도 있으며, 현재는 그 모든 경험과 상관없이 공공헌책방에서 헌책을 만지고 있다. 리커버리센터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