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엔틱거리>

김승범 기자가 직접 걸으며 오감으로 느낀 특별한 공간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요즘 카페 탐방은 SNS의 인기 있는 카테고리다. 차 한 잔 마시는 것보다 어떤 곳에서 차를 마시느냐가 더 중요해진 요즘이다. 카페마다 개성 있는 인테리어와 소품, 문화적 요소들이 있어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하는 동안 자신이 무엇이 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카페를 들어가면 우선 맘에 드는 자리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자, 테이블을 먼저 보는 습관이 있다. 안락하고 편한 의자, 책을 펴고 싶은 고상한 테이블 등 커피 한잔 시키고 자기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느 시대에도 가구와 소품들은 개인이나 관계 안에서 중요한 품위의 요소들이었다. 의자 하나에도 권력과 계급과 신분을 표시할 만큼의 쓰임새가 있다. 문화의 조류에 따라 다양한 표현과 양식으로 변모하였는데, 18세기 이후부터 근대까지 제작된 지 100년이 넘으면 엔틱(antique), 100년 미만이면 빈티지(vintage)라 한다. 세월이 지나도 오히려 자체의 문화적 보존성이 그 가치를 더해 사람들에게 계속 사랑받고 있다.
1960년대 국내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본국을 넘나들면서 가지고 온 가구와 생활 소품들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형성된 시장이 이태원의 엔틱거리다. 다양한 경로로 서양의 엔틱과 빈티지 상품들이 들어서있는데, 이태원의 헤밀튼호텔 맞은편 내리막길 200여 미터의 거리가 바로 그곳.

길가에 전시된 빈티지 영국 의자가 눈에 띄었다. 오래 되어 파손은 안 될까 눈치 보며 살짝 앉아보았는데 의외로 튼튼하고 안락하다. 95년 된 의자의 손잡이를 만져보며 거쳐 갔던 수많은 손 중 하나라는 생각에 묘한 경외감이 들었다. 서양의 예술조류를 공부하고 가면 좀 더 풍성하고 재미있는 시간이 될 듯싶다.
영국의 직선과 중후한 자코비안 양식. 프랑스의 선이 얇고 라운드가 많은 화려한 장식의 로코코 양식, 독일의 도자기가 입혀진 르네상스식 드레스덴 양식 등 알고 보면 각 시대의 느낌과 각 나라별 감성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가구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현대의 신상품들은 깨끗하고 세련된 디자인일지라도 유행과 쓰임새의 효율성으로 계속 바뀌게 된다. 그러나 엔틱이나 빈티지는 ‘시간’이라는 가치를, ‘문화적 희소성’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건마다 세월의 흔적이 농후하지만 마치 물려받은 귀한 소품들처럼 당장이라도 사고 싶은 좋은 아이템들이 많이 있다. 그런 이유로 카페관련 종사자들이나 영화 관계자들이 주요 고객이라 한다.
제품 하나하나가 대량생산으로 만든 제품이 아닌 누군가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작품들이기에 더 가치가 있다. 어쩌면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 몇 세대를 거쳐 또 다른 주인을 기다리는 듯하다.

엔틱거리에서 의자와 테이블이 가장 끌렸다. 보고 싶은 의자는 대체로 화려하고 품위 있어 쉽게 앉기보다는 포인트로 배치하면 좋겠다 싶고, 앉고 싶은 의자는 소박하며 편안한 의자다. 또한 테이블은 나무의 따뜻한 질감이 느껴지는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세월이 지나 나이 들수록 진정한 가치는 ‘경험과 깨달음과 덕’인 것 같다. 실력과 인생의 성취는 넘쳐도 주변에 진정한 친구들이 없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실력과 성취는 다소 부족해도 많은 친구와 우정이 넘치는 덕스러운 사람도 있다.
시간이 지나 나의 인생을 통해 편히 앉을 수 있고 좋은 꿈을 꿀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엔틱’이 있을까.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몸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나 존재는 더 빛을 발할 뿐.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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