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플레이스 2>

대사가 거의 없는 공포 영화인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는 제작비 대비 20배의 매출이라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둔 작품입니다. 괴생명체에 의해 지구가 종말 직전으로 내몰린 상황 속에서, 한 가족의 생존기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짜임새 있는 전개와 숨 막히는 연출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역시나 3년 만에 그 속편이 나왔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는 꽤 독특한 설정을 보여줍니다. 어느 날 지구 곳곳에 커다란 운석들이 떨어지고, 거기에서 괴생명체들이 튀어나와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여기까진 여타 흔한 재난 공포물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 괴생명체들이 색달라요. 총알도, 폭탄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한 외피를 한 이 괴물들은 특이하게도 눈이 없습니다. 대신 귀는 고도로 발달해 오로지 청각에만 반응하며, 소리를 내는 모든 것을 죽이고 파괴합니다. 따라서 이 괴물을 피하려면, 절대로 소리를 내선 안 됩니다. 작은 소리라도 내는 순간, 이 괴물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모든 걸 쓸어버립니다. 그 어떤 소리도 내선 안 되기에 수화로 대화해야 합니다. 놀라거나 무섭다고 해서 비명 또한 질러서도 안 됩니다. 발소리도 내면 안 되기에, 모래로 된 길 위를 맨발로 걷습니다. 사육·도축 과정이 요란한 닭이나 소·돼지 같은 육상 동물은 먹을 수 없고, 대신 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따라서 영화가 무척 조용해요. 그러다 실수로 조그만 소리라도 나면, 난리가 나지요. 영화 속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주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까지 했습니다. 3년 전, 전편이 개봉됐을 때, 팝콘과 음료수를 들고 들어갔던 관객들이 그대로 갖고 나오는 경우가 흔했던 겁니다. 영화관에서 먹는 소리마저 낼 수 없을 만큼 숨죽이고 봤던 거지요.

여하튼 이번에 개봉한 속편은 전편이 끝났던 바로 다음 날로 이어집니다. 겨우 살아남은 가족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데, 전편이 부모의 헌신과 희생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속편은 자녀들의 성장과 홀로서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 속 세계를 지켜보다 보면, 우리가 겪는 상황이 자연스레 오버랩 됩니다. 우린 수많은 목소리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실제 음성으로도 들리지만, 그보다 더 많은 목소리가 SNS와 인터넷상에 문자화되어 떠돕니다. 그러다 작은 꼬투리라도 하나 잡혀 표적이 되는 순간 조리돌림 당하는 건 순식간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침묵하거나, 아니면 출처를 가린 익명 뒤에 숨어 소리를 냅니다. 사방이 덫이고, 사냥꾼뿐이니, 복지부동(伏地不動)만이 살길 같습니다.
그런데,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주인공 가족은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모색합니다. 절대로 갇혀 있으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관객으로선 그들이 조용히 안에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가두면 그 순간엔 살 수 있겠지만, 결국엔 죽음이요, 종말이지요. 그렇기에 그들의 시선은 늘 외부를 향해 있고, 밖으로 탈주합니다.
더불어서 (물론 외계에서 온 괴생명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만) 그들은 소리에 민감해집니다. 늘 외부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려고 시도해요.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다시금 우리에게 말합니다. 넘치는 소리들을 소음으로 치부하고 아예 귀 닫아 버림으로써, 정작 들어야 할 소리마저 차단하지는 않았는지요. 영화 속 괴물에게 있어서 소리는 전부 소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지요. 낼 소리와 내지 말아야 할 소리도 구분해야겠지만, 들어야 할 소리와 듣지 말아야 할 소리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린 늘 스스로 되물어야 합니다. 무얼 듣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말입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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