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유연함'에 대하여

원래 말랑했어야 해
상담심리 전문가로서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일에서의 어려움, 학업 성적의 하락, 상대적 박탈감, 경제적 빚으로 인한 신음, 자녀 문제, 배우자 문제, 건강 문제,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엄청난 스트레스….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이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음과 몸 모두를 의미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깨에 손을 대볼 수 있다. 혹시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면 충격적 사실을 전한다. 지금 당신이 만지는 그 부위는 그냥 근육이고 살이다. 그 부위는 원래 말랑말랑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몸과 마음을 함께
심리학이 밝혀낸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톱니바퀴처럼 하나의 작동은 다른 하나의 작동을 불러일으킨다. 당신의 몸이 경직되어 있다는 것은, 그래서 어깨와 목이 뭉치고 소화가 잘 안 되고 잠이 도무지 안 오며, 두통이 생긴다는 뜻이며 그만큼이나 “나 어떡하지?”, “왜 이렇게 삶이 힘들지?” 같은 부정적 생각이 출몰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리라.
한편, 요즘 탄력성이라는 단어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것은 “나는 반드시 ~을 해야 해” “네가 ~을 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야”라는 단언적이고 경직된 생각에서 “그럴 수도 있지”, “아 그 말을 들으니 또 이해가 되네”와 같은 마음의 여유를 품는 생각을 의미한다. 유연한 생각은 유연한 마음을, 유연한 마음은 유연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탄력성’ 앞에 무슨 단어 하나가 빠진 것 같은 인상이다. 정답은? 바로 ‘회복’이다. 그래서 둘을 이으면 ‘회복 탄력성’이 된다. 이처럼 탄력성은 사실 회복과 아주 가깝다.
그러나 탄력성을 잃고 있는 요즘, 코로나 시대의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공간도 박탈당한 채 거실에 놓인 좌식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켠 채 업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는 그렇게 경직된 자세로 앉아 스크린만 보는 데 익숙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노트북이나 TV와 같은 기계가 아니라 유기체적인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니터와 그 안에 있는 작은 활자만 상대하면 목과 어깨가 아프고 눈이 침침하며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게 되고 허리가 욱신거린다.

유연한 몸과 마음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연한 몸과 마음을 위해 좋은 방법을 하나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는 크게 간단한 세 가지의 단계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자연 걷기이다. 자연 걷기엔 몇 가지 강력한 이점이 있다. 먼저 자연 한복판 어느 숲에 있을 때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풍부한 빛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자연광’이라고 부른다. 자연광은 멜라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키는데 이는 숙면과 우울한 마음을 경감하는데 효과적이다. 또한 우리는 숲속에 있을 때 새소리와 바람 소리,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줄이는데 효과적인 피톤치드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똑바로 만들어진 아스팔트의 길과 다르게 자연은 구불구불한 길과 바닥의 높낮이가 제각기로, 이러한 요소는 걷는 우리에게 있어 흥미롭고 다양한 촉감을 갖게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자연을 걸으며 그것을 느끼는 것이다. 눈을 감고 가장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던 순간을 상상해볼 수 있다. 어디를 가고 싶은지를 그려볼 수 있다. 보통 이 상상엔 놀랍게도 자연이 있다. 어떤 이는 바람이 부는 한 언덕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누군가와 이야기했던 순간이 떠올릴 수 있다. 너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떠올릴 수 있다. 놀랍게도 이는 아득한 추억이나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지금도 즉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 바람이 부는 동산에 올라갈 수 있다면 그곳에서 손을 벌리고 거기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길. 만약 좀 더 시간을 잠시 내어 숲 속 어딘가에 위치한 작은 시냇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물이 어떤 감촉으로 전해지는지를 느껴볼 수 있다. 또한 당신이 아름드리나무에 위치한 벤치에 앉을 수 있다면 가만히 어깨에 닿는 작은 잎사귀의 촉감을 느껴볼 수 있다. 그것은 디지털이 줄 수 없는 감각의 풍부함이다. 우리의 몸은 자연과 어울리게 설계되어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자연을 걸으며 그것을 느끼는 동안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유연하다. 강력한 증거 중 하나는 우리가 매 순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내쉴 때 쪼그라들었다가 들이쉴 때 팽창한다. 그러나 스트레스에 둘러싸여 있으면 ‘얕은 호흡’만 쉬게 된다. 횡격막을 통해 흐르지 못하는 얕은 호흡은 불안을 가중시키고 그리하여 몸과 마음은 다시 경직된다.
깊은 숨은 우리의 몸을 즉시 이완하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요즘은 여러 호흡법이 소개되어 있지만 쉽고도 효과적인 호흡법 하나를 추천드리며 글을 맺으려 한다. ‘46 호흡법’이다. 이 호흡법은 천천히 자연 속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도 손쉽게 해볼 수 있다. 먼저 4초는 코로 들이쉰다. 그리고 조금 멈추는 것이다. 그 다음 6초는 코와 입 모두로 내쉰다. 눈을 감고 자신의 나이 숫자만큼 하면 좋다. 이 과정에서 벤치에 앉아 있는 당신은 내 몸이 이완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몸이 이완될 때 마음도 이완되기 시작한다.

바쁜 일상에서 잠깐 떠나 자연에서 숨을 잠깐 돌리고 오는 경험은 우리에게 소중한 생각을 일깨운다. 그것은 우리가 바로 기계가 아니라 ‘호흡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몸이 그만큼이나 크게 부풀고 다시 줄 수 있다는 유연성을 깨닫게 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긴 호흡으로 조금 더 멀고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유연함을, 삶은 좁은 웅덩이가 아니라 너른 바다와 같은 유연함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헌주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 여러 심리/정서 관련 과목을 맡고 있으며, 다수의 기업과 교회에서 상담심리에 관련된 스트레스 관리, 감정 코칭, 관계 증진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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