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_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문학동네, 2012년


자녀 독서 교육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이 부모가 먼저 책을 읽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정설인 것 같아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를 꾸준히 실천했으나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예상과 기대를 벗어나기 일쑤였다. 장르에 따라 관심을 보이는 책도 있었지만 책 읽기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더라도 책 말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넘쳐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책 읽는 아이는 어떻게 길러지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제목의 책을 만났다. 부제가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열 개의 단어를 열 쌍의 눈으로 삼아 열 개의 방향에서 중국을 응시하는 책’이지만 이 책은 책 읽는 습관 기르기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책 읽기의 매력이란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문제 해결의 영감을 준다는 것인데 이 책에서도 그랬다.

1973년 문화대혁명이 7년째로 접어들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읽을 만한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당시 거의 모든 문학 작품은 ‘독초’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도서관에 남아 있는 20여 권의 소설은 사회주의 혁명 문학이었는데 그는 이 모든 소설을 아주 진지하게 독파했다. 또 <마오쩌둥 선집>에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관해 설명하는 이야기와 다양한 인물을 읽으며 흥미를 가졌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다행히 불에 타 없어지는 운명을 피하고 은밀하게 유통되었던 이른바 독초라고 불리는 진짜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수천 명의 손을 거쳐서인지 책들은 모조리 심하게 낡은 상태였고, 앞과 뒷부분이 상당히 찢겨 나간 책이 대부분이었다. 하여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끝나는지도 몰랐다. 이야기의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모르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결말이 없는 이야기들은 그를 훈련시켰다.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침내 그는 스스로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내고 이렇게 지어낸 이야기에 스스로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에 이르렀다.

이 책의 저자 위화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것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던 것일까? 아니면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근현대 역사가 생활 속 우연의 산물로서 위화라는 작가를 낳은 것일까?
아이들이 책을 즐기도록 하려면 우리 집에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야 하는 것인가? 모든 책을 중고 거래로 팔아 버리고 아주 두꺼운 분량의 ‘벽돌 책’ 몇 권만을 남겨 놓는 방안을 유력한 카드로 만지작거리며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내가 우리 집에서 마오쩌둥이나 진시황 같은 권력자도 아닐 뿐더러,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며 정치는 타협일지니 극단적인 방법은 잠시 뒤로하고, 책 읽기와 관련한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면서 그중에 우연한 책 한 권이 아이들 책 읽기의 운명적인 순간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는 정도로 일단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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