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책 제목은 삶과 그 여정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던져준다. 이 화두를 우리시대 노년들에게 던진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노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으로 산다는 말은 생애 의미와 생애를 둘러싼 환경을 포괄적으로 의미할 수 있다. 과거 노년은 ‘나이’가 ‘값’이었다. 나이 값은 살아온 세월과 세월교관의 훈련에 따라 생겨난 경험과 습관, 그리고 긴 세월을 통과하며 정금같이 얻어낸 지혜로 그 값을 했다. 세상의 지식과 경험을 관대함의 포대기에 싸 젊은 세대들에게 전달했고, 생애 후학들은 세월과 지혜가 응축된 한마디를 듣고자 귀를 기울이고 그 세월과 그 나이를 존경했다.

지금의 값은?
그런데 지금의 나이 값은 그야말로 헐값이 되었다. 떨이도 이런 떨이가 있나 싶을 정도라 허탈하기까지 하다. 긴 세월의 값은커녕 이제 나이는 ‘낡음’, ‘뒤쳐짐’과 연결되고 골키퍼 없는 골대마냥 온갖 오욕에 시달리기 일쑤다. 역사상 가장 섭섭한 노년세대를 살고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의 처지가 이리되었나 싶다.
하기야 누가 봐도 노인 같지 않은 시대의 노인인지라 늙음을 알아 달라 말하기도 쉽지 않다. 틀니조차 없는 할아버지들은 임플란트로 건치가 빛나고 굽은 허리에 서리 앉은 할머니는 인공관절과 디스크수술을 마치고 미장원을 들려 그새 올라온 흰머리를 흑발로 물들이고 섬섬옥수 매니큐어로 멋을 더하니, 요즘은 어른들 나이 알아맞히는 일이 제일 어렵다. 그렇다보니 젊어지는 몸으로 나이를 외치는 것도 참으로 어색해졌다.

역할로 산다
그럼 지금의 노년들은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21세기 스마트한 노년들은 ‘나이’로 살지 않고 ‘역할’로 산다. 나이로 자신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역할정체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고 규명한다.
다시 말하자면, 주민등록상의 나이인 ‘역연령(曆年齡)’이 아니라 ‘주관적 연령과 역할’에 따라 산다. 예를 들어 지금 나이가 70세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느껴지는 마음의 나이는 50대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50대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옷과 문화적 취향 역시 마음의 나이에 따라 선택한다. 장소와 관계 그리고 역할 역시 그 나이에 맞는 것을 찾는다.
흥미로운 것은 원래 나이보다 더 젊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건강상태도 좋을 뿐 아니라, 활동성, 경제력, 자기긍정 정도도 더 좋은 점수를 보인다. 그러니 주관적 연령이 젊다면, 즉 나이를 ‘덜’수록 그 사람의 행복감과 활동성, 사회적 유능감까지 높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 나이 ‘들’수록 나이 ‘덜’어내는 것도 권할 만하다. 그렇다고 나이 듦을 거부하자는 게 아니다. 세월을 누가 피하겠는가. 다만 기왕 세월과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면 미셀 푸코의 이야기처럼 주어진 것에 순응하는 ‘종속적 주체’보다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능동적 주체’로 살아가자는 말이다.

여전히 관계의 계절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늙는다. 아무리 건강해도 통증은 어느덧 찾아온다. 그러나 어디 노년이 늙음과 통증의 계절이기만 하겠는가. 여전히 관계의 계절이고 충분히 만끽하는 시기이다. 심장 박동기를 달고서도 그 마음이 겁 없는 20대의 심정이라면 당신은 사회와 이성에 관심이 더 많을 것이고, 빛나는 30대의 심정이라면 젊은 사자처럼 자신감으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닐 것이다. 흔들림 없는 40대의 심정이라면 전 세대를 두루 돌보는 시대의 복지사가 되어 기꺼이 봉사에 뛰어들 것이고, 생애 절정인 50대의 마음이라면 선배의 역할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진중한 60대의 심정이라면 삶의 우아함을 실현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고 말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이런 몸짓들은 나이 값 못하는 철없는 이들의 일이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심리학자들과 노년학자들, 사회학자들 모두 입을 모아 나이 값이 아니라 역할 값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야말로 ‘나이 들수록’이 나이 ‘덜’수록으로 참여적이고 주도적인 사회인으로 노년들이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나이 값 안하고 제철이 무색한 이런 나이 ‘덜’한 신노년들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른다지! 마음의 나이를 ‘덜’수록 ‘더’ 행복해지고 주도적이 된다면, 기꺼이 그 나이를 덜어보자. 속 다르고 겉 다른 노인이 되어보자. 그래서 행복하고 실속 있게 살아보자. 오늘부터 ‘마음나이 다이어트’를 시작해보자!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이자 한국노인상담센터장. 상담전문가이자 부모교육전문가로 활동중이며 나이들어가며 필요한 것들과 어른의 역할에 대한 글을 주로 쓴다. <나이들수록 머리가 좋아지는 법> <가족습관> 등을 썼으며 <이호선의 나이들수록>을 글로 쓰고 영상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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