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한 입의 인생 수업>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있을까요? 좋은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별 생각 없이 쓰는 말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생각해 보게 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바로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이 글을 쓰고, 제인 다이어가 그림을 그린 <쿠키 한 입의 인생 수업>입니다. 이 책은 쿠키로 ‘인내’, ‘신뢰’, ‘공경’, ‘정직’, ‘용기’ 등의 추상적인 단어의 뜻을 잘 풀어주는 사전 같은 그림책입니다.

이 특별한 사전은 구체적이고 행동적입니다. 예를 들면, “어른을 공경한다는 건, 갓 구운 쿠키를 맨 먼저 할머니께 드리는 거야”같이요. ‘공손히 받들어 모심’이라는 국어사전의 풀이를 기가 막히게 잘 이해되는 상황으로 그려내는 겁니다. 설명이 쉽고 간단할 뿐만 아니라 교훈을 담고 있어서 쿠키로 세상의 모든 단어들을 풀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 장면의 그림은 언어 이상으로 단어의 뜻을 잘 풀어줍니다. ‘믿음을 준다는 것’에 대한 설명을 봅시다. 글은 “친구가 나가면서 쿠키를 맡기면, 돌아올 때까지 안 먹고 잘 가지고 있는 거야”로 되어 있습니다.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꾹 다문 아이의 표정에는 쿠키를 먹고 싶지만, 그 욕망을 이기고 친구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는 결연함이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건 아무 갈등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남을 배려한다는 건 마지막 하나 남은 쿠키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슬퍼하는 친구에게 “걱정 마, 괜찮아. 내 쿠키 나눠먹으면 돼”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림 속 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식탁 너머 친구에게 쿠키를 건네기 위해 거의 식탁 위로 기어오를 태세입니다. 그림은 배려가 입으로만 걱정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수채화 그림은 따뜻하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유머러스합니다. 각 장면마다 인종과 성별이 다른 여러 어린이들과 각종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표정이나 행동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앞서 예로 들었던 ‘믿음’에서 쿠키를 맡기고서 옷을 입고 나가는 말의 걱정스러운 표정과 ‘배려’에서 쿠키를 바닥에 떨어뜨린 고양이가 손수건을 들고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 한 입, 나머지는 다 내 것”이라고 ‘불공평’을 설명한 부분도 그렇습니다. 혼자 쿠키를 다 먹어버린 아이는 눈 둘 곳이 없습니다. 옆에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입에 문 쿠키를 끝까지 입 속에 다 밀어 넣지도 못합니다. 강아지는 팔짱을 끼고 그런 아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고요. 수채화가 그려낸 평화로운 전원 배경과 사랑스러운 아이와 강아지가 빚어내는 묘한 긴장의 아이러니가 사랑스러우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요즈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참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인내’의 사전적인 의미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딤’입니다. 이 풀이에는 참고 견딘 후에 맞이할 기쁨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쿠키 한 입의 인생 수업>의 ‘인내’는 다릅니다. ‘참는다는 건’ 쿠키가 다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림 속에서 아이와 강아지는 오븐 앞을 떠나지도 못하고, 오븐만을 바라보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기다림의 끝에는 따끈하고 맛있는 쿠키가 있다는 것을요.

코로나가 참 길고 지루합니다. 기다리고, 조금 더 기다리고,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답답합니다. 하지만, 이 참는 시간의 끝에는 분명히 달콤하고 맛있는 ‘쿠키’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인간의 무력함을 절절히 느꼈으니 더 겸손해질 것이고, 어려운 문제를 함께 이겨나가는 경험을 축적할 것입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될 것이고,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 · 제인 다이어의 <쿠키 한 입의 인생 수업>, 책읽는곰

김민정
성균관대학교 아동학과에서 아동문학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감연구센터 대표로 아이들이 그림책과 자연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을 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초빙교수, 생활과학연구소 그림책 전문가과정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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