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돌담은 제주인의 지혜가 녹아있는 작품이다. 바람 많은 제주에는, 밭이며 집이며 무덤이며 검은 화산석 돌담이 경계를 이룬다.
그러나 이 경계는 내 것과 네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강한 바람으로부터 돌담 안에 있는 것들을 지키고자 함이다. 그래서 담장도 사람의 키를 넘지 않고, 밭이나 무덤의 돌담은 껑충 다리로 넘을 만한 나지막한 높이다.
돌담에는 돌과 돌 사이에 틈이 있는데, 틈을 통해 안과 밖이 소통하고, 빈틈으로 바람이 빠져나가 어지간한 태풍에도 무너지는 법이 없다. 제주의 담장이 무너질 정도의 태풍이라면, 인위로는 어쩔 수 없는 큰 태풍인 것이다.

요즘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주의 돌담을 쌓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담을 쌓을 경우에는, 돌담을 완성한 후에 담장 한 쪽을 힘주어 밀면 담장이 흔들거린다. 이런 돌담이 잘 쌓은 돌담이라고 한다. 흔들거리지 않는 돌담은 튼튼해 보이지만, 이런 담장은 태풍이 오면 이내 무너져 버린다고 한다.

흔들흔들 거리며 빈틈이 성성한 돌담, 이런 돌담이 제대로 쌓은 돌담이라는 이야기다. 무너진 돌담, 그것은 빈틈이 없고 남과의 경계를 짓고, 너와 네가 소통하지 못하던 담장이었을 것이다. 제주도에 살적에 돌담이 무너질 만큼의 태풍을 만난 적이 있다. 무너진 많은 돌담은 시멘트로 마감을 했거나, 돌을 각지게 다듬어 거의 빈틈이 없는 돌담인 경우가 많았다.
빈틈이 좀 있어야 인간미가 넘친다. 인생이란 흔들흔들 흔들리면서 가는 것이다. 빈틈 있고, 흔들리는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해가며 사는 것, 그것이 정겨운 삶이 아닐까?

김민수
한남교회 담임목사. 작은 들꽃들과 소통을 하면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세상에 전하고 있는데, 비주얼 에세이집 <달팽이 걸음으로 제주를 보다>와 365 풀꽃묵상집 <하나님 거기 계셨군요>등을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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