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풍경> 유지원 지음, 을유문화사, 2019년

어찌 보면 최초의 글은 그림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들소, 야생마, 사슴, 염소 등과 함께 주술사 같은 인물이 그려져 있고,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청동기인들이 고래잡이의 안전과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했거나 고래 잡는 방법을 교육하는 그림이 아니었을까 추정한다.
인류가 사용하는 여러 글자의 기원을 살펴보면 사물을 본떠서 그 모양이나 그것에 관련된 관념을 나타낸 상형문자가 자리하지만, 문명이 발전하면서 세상의 모든 의미를 그림 같은 이미지만으로 표현하기란 이내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당대의 풍경을 생생히 담아냈던 그림 글자 시대의 낭만을 글자 속에서 찾기란 이제 어려운 것일까?

그래픽 디자이너 유지원 작가가 쓴 <글자 풍경>을 보면 다행히 오늘날의 글자도 어김없이 자연 및 사회의 맥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낸 자취를 품고 있다. 글자 하나일지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첨단 현미경으로 유전자 지도를 살펴보는 것처럼 세월이 스치고 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 글자란 생물과 같아서 기술과 문화, 자연환경의 생태 속에서 피어난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눈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그 생태를 확인한 후 현지에서 입수한 자료만으로 이 책을 써, 흡사 글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서가 되기도 한다. 글자를 만나는 여행이라니,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여행할 때 그 지역의 문화유산 및 자연환경·동시대적 발전상을 각각 따로 떼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온도·습도·햇빛의 강도 등 모든 것의 맥락 속에 몸을 풍덩 던진 채 전체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글자가 만들어내는 풍경 또한 마찬가지 과정으로 즐길 수 있다.

유럽에서는 알프스 북쪽 침엽수 같은, 남쪽 활엽수 같은 글자를 만나고, 유럽 대륙 너머에서는 잉글랜드식 글자를 만난다. 뉴욕에서는 스위스 헬베티카 서체가 탈지역적인 모양으로 문화의 용광로를 품어 안고, 서울에서는 서울남산체가 단아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보여준다. 영어와 한자가 만나는 홍콩에서 글자는 너는 너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어울리는 억압 없는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중동 아랍 지역에서 글자는 규칙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그렇다고 불규칙하지만은 않으면서 결정을 이루는 모양으로 우주를 구성하는 물리학 이론에도 영감을 준다. 색채의 향연, ‘홀리 축제’로 유명한 인도의 글자는 ‘흑과 백 사이(between black and white)’라는 글자 세계의 의심할 바 없는 명제마저도 무색하게 만들 만큼 넘치도록 생생한 빛깔을 가진다.
“사방의 지역마다 자연의 풍토가 다르다. 따라서 지역마다 사람의 발성과 호흡도 달라진다. 그러니 언어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글자 또한 서로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억지로 같게 만들려고 하면 조화에 어긋난다.”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해 가던 무렵, 그와 거의 동년배였던 학자 정인지(1396-1478)가 세종 시대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서 남긴 말이다. 이보다 더 아름답게 글자의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을까? 글씨를 쓸 때마다 부끄러워지는 내 손에게는 안심이 되고, 위안이 되기도 하는 말이다.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