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봉 귤농장에서 알게 되는 ‘생명 보기’

김승범 기자가 직접 걸으며 오감으로 느낀 특별한 공간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제주도로 이주한 지 두 달이 다 되간다. 새로운 시작에 앞서 적응하고 준비하는 일에 어수선하다.

한 달 전 후배가 새로 귤농장을 임대했다. 모슬봉 중턱에 멀리 한라산과 단산, 산방산이 이어져 남서 바다가 병풍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농장이다. 농사를 안 해 본 내게 생경한 일이지만 경험하고 배울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3, 4월은 가지치기하는 시기다. 과실농사에서 가지치기는 그 해 과실수확의 가장 중요한 준비 작업이다. 작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따낸 귤나무는, 해산하고 기진맥진한 산모처럼 힘이 없고 지쳐 있다. 나무 한그루에서 열리는 귤의 수를 볼 때 그러고도 남는다. 그 해 열매를 많이 맺은 나무는 영양상태를 갖추기 위해 다음해에는 열매를 적게 맺게 한다. 이를 ‘해걸이’라 한다. 해걸이를 안하게 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영양분도 주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전정작업(가지치기)으로 수확량을 조절해 주는 것이다. 나무를 위해서도 전정작업은 고마운 일이다.

전정해 낼 가지 선택권 가진 농부
농장의 원 주인 최제철 어른은 주변에서 농사 그렇게 힘들게 지으면 돈 못 번다고 할 정도로 원칙 있는 유기농 농사를 지어왔다. 그만큼 손과 시간이 많이 드는 힘든 농사다. 자연끼리 자력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추구한다. 그분의 지도 아래 새로 시작하는 농사라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이 될 것 같다. 그분의 귤나무에 대한 애정과 정성을 보면 자식도 저리 키우셨을까 싶을 정도로 각별하다. 그럼에도 전정작업 때는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가지를 무심히 잘라낸다. 농부라야만 아는 부분이다.
과실 수가 잘 자라고 당도를 높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햇빛이다.
가지끼리 겹쳐 햇빛을 가리거나 바닥을 향해 늘어진 가지는 잘라낸다. 작년에 열매 맺은 힘이 없는 잎과 가지를 잘라내면 잘라낸 곳에서 새순이 나온다. 봄순이 나고 45일 후 봄뿌리가 생기고 여름순이 나고 45일 후 여름 뿌리가 생긴다. 새로운 잎이 생겨야 새 뿌리가 많이 생기고 나무는 더 건강해진다.

나무 전체를 보아야 하는 ‘깊은 사랑’
성경의 포도나무 비유를 볼 때 마음 한구석에선 가지도 생명인데 너무 냉정한 것 아닌가 좀 잘 키우면 안 될까 하는 휴머니즘 넘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전정작업을 통해 알게 된 가지치기는 나무 전체를 보아야 하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 안에는 열매 맺기 위한 나무의 상태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가지마다의 환경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잘려나가는 가지만 보아서는 전정을 할 수 없다. 그 일을 통해 더욱 생육하는 전체의 생명을 보아야 한다. 전정작업은 정답이 없다고 한다. 좋은 판단을 가진 농부의 경험과 판단이 자연과 함께 만들어낸다.

내 삶의 가지치기를 생각하는 공간
제주살이를 시작하면서 소모적인 시간과 만남, 나쁜 습관, 생각 등, 나름의 가지치기를 한 듯하다. 그럼에도 불현듯 다가오는 여러 복잡한 생각과 불안의 그늘에 힘이 빠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음먹는다. 가지가지하며 살지 말고 가지치고 빛 속에서 살자. 빛쟁이로 살자 그렇게.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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