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가지 초록색이 번져가는 지상의 5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한 말은 이미 노래가 되었다.

“아침산책의 기대로 설레지 않는다면 눈치 채라, 당신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오늘 아침 산책길에 햇빛을 등진 연초록 잎사귀들이 아름 등을 켜고 있었다. 문득 ‘빛’의 이유를 정정하고 싶었다. ‘어둠을 밝힘보다는 모든 생명들의 제 빛깔 드러냄이 우선이 아닐까?’ ‘진선미’라는 단어도 수정하고 싶었다. ‘진리냐 거짓이냐’, ‘선이냐 악이냐’의 옳음을 지켜내는 중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미’를 우선에 두고 싶었다. 세상이라는 삶의 전쟁터 속에서는 ‘미선진’이라는 우선순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남 합천에는 ‘오두막 공동체’가 있다. 어느 날 그 공동체에서 한 교훈을 들었다. 세상에서 밀려난 이들과 함께 식구로 살아가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옳음’을 내려놓은 일이었다는 말이었다. 사랑을 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옳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사랑에는 분명 ‘미’의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 13장 7절) 다 주고도 미안할 때가 있다. 져주고도 미안할 때가 있다. 사랑은.

‘천국 속에 사랑이 있다’ 보다는, ‘사랑 속에 천국이 있다’는 표현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러니 천국에 간다는 표현보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사랑을 한다는 것의 가치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세상은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에요.” 누군가의 이 말이 고맙다. 영원이며 천국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오시었으니, 이젠 우리가 천국의 꽃으로 피어날 차례임이 분명하다. 사랑은 모든 차원을 초월한다. 얼마나 위대한 아름다움인가! “사랑 속에는 모래알보다 작은 ‘관용’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관용’이라는 단어 속에는 우주가 들어있다.” 참으로 멋진 아름다움이다.
 
아침 산책길에 신의 땀방울이 풀잎에, 꽃잎에, 나뭇잎에 맑게 떨어져 있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 신은 은은한 별빛을 켜 두시고 몰래 하루를 짓다 떨어뜨린 땀방울이다. 신은 들키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은 생의 첫 날인 ‘오늘’이라는 ‘현재’가 ‘선물’(Present)이라는 단어라는 게 새삼스럽다.

익숙해지면 소홀해진다 했다. 소홀해진다는 건, 눈은 있으나 망울이 없는 것과 같다. 눈은 있으나 못 보고 귀는 있으나 듣지 못하는 아둔함이다. 시인 구상님의 ‘두 이레 강아지만큼이라도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 라는 시에서 시인은 은총에 눈뜸에 대하여 난 지 보름이 되어서야 눈을 뜨는 강아지에 비유를 들며 인간을 더욱 꼬집는다. 세상 떠날 나이에 이르러 두 이레 강아지만큼 눈을 떠 보니,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게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써 감사한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동에서 해가 뜨고 서에서 해가 지는 것도 마치 태초 이후 처음 알았다는 듯 신기하고,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소중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어느 대중가수는 떠나보면 안다고 노래하고, 또 어느 시인은 때늦은 후회가 가르친다고 노래한다.
우리네 현주소는 사랑 속, 은총 속,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진정 은총에 눈이 뜨여진다면 감사가 기도의 전부가 아닐까. 뭘 더 바라고, 왜 더 바랄까. 이미 주신 천상의 보물을 누리기에도 인생은 너무도 짧아서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
 
언젠가 페이스북 벗님의 댓글이 참 좋았다. “엄청 매우 많이 기쁜 날” 우리들의 느낌과 기분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늘’이라는 날은 “엄청 매우 많이 기쁜 날“이다. 우리의 느낌과 기분의 주파수를 신의 마음에 오롯이 맞춘다면 분명 전과는 다른 하루가 열리고 잃었던 망울이 찾아지지 않을까 싶다. 지상의 자존심은 소멸되고 찾아든 천국 자존감은 우리로 지상을 사나, 천상을 사는 천국시민권자의 자유를 만끽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삶을 사는 이들은 아무리 봄날이 아름다워도 그의 앞날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그의 길에 꽃이 피지 않아도 그가 바로 지상에 핀 천국의 꽃이기에 그가 걸으면 꽃길인 것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이며, 얼마나 아름다움 속에 사는 지를 깨닫는다면 ‘헌신과 충성’을 낳는 ‘향유와 축제’가 어느새 삶을 주도해 나갈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생각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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