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즐기며, 사랑을 만끽하며, 복을 누리며

우리나라에는 두 공화국이 서로 마주 서 있습니다. 하나는 “선진 공화국”이고, 다른 하나는 “자살 공화국”입니다. 하나는 행복의 지표이고, 다른 하나는 불행의 지표입니다.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와도 같이 양극화의 모습을 보입니다.

3050 선진국 클럽 7번째 회원국
세계은행이 발표한 2018년도 우리나라의 GNP 규모는 1조6,194달러로 세계 12위에 이르고, 1인당 GNI(총소득)는 3만600달러로 30위입니다. 하지만 소규모 부유국가들을 제외하면 10위 안에 들어갑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과 인구 5천만 이상의 소위 경제 선진국을 일컫는 <3050 선진국클럽>에 7번째 회원국입니다.
전통적인 서구 선진국들인 미국, 영국, 프랑스와 전범 국가들이었다가 대국으로 승급한 독일, 이태리, 일본 외에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어 가장 빠른 속도와 폭으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첨단기술과 정보화와 의료수준까지 각광을 받고, 선풍적인 문화예술 발흥을 주도한, 여러 면에서 신바람의 선두주자입니다.

생명은 사랑을 먹고 산다
그런데 반대로 서글픈 비극의 현실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자살자 총수가 2019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3,670명으로 OECD가 지표로 사용하는 표준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비율이 27.9명으로 1위입니다. 하루 평균 자살 사망자가 38명이나 됩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8.4명) 보다 4배가 넘는 숫자입니다. 이 부정적 오명은 부끄러움 그리고 아픔의 상징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와 같은 부정적인 “자살”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을 온전히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요? 절망에서 희망으로, 불행한 좌절에서 행복한 자부심으로 국면 전환을 할 수 있을까요?

‘소유’가 아니라 ‘존재 이유’인 사랑
“살자”는 생명을 살자는 운동입니다. 생명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생명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집단의 소유물도 아닙니다. 사랑도 소유물이 아닙니다. 사랑은 진행형입니다. 생명체의 존재 방식이고 존재 이유입니다. 사랑이 아닌 생명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사랑을 모릅니다. 살아있는 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세 가지의 사랑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사랑입니다. 생명이 절대적 가치입니다. 자살을 조장하는 신은 없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아닌 신은 미신이고 잡신이며 사기이며 우상이며 허상일 뿐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신은 죽음에 저항하고 죽음의 세력에 도전합니다. 생명의 과정에 충실하게 동행해 줍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신은 죽음을 이깁니다. 죽음을 “죽이고” 생명에게 “승리”를 부여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뜻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1서 4장 8절)라고 선포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공멸하고 만다
다른 하나의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을 알고, 사랑을 알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자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라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여 죽음에 빠지는 사람이 이웃의 생명을 사랑할 수도 없고, 그 반대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자신과 이웃이 분열하면 함께 사는 공동체는 파괴되고 공멸의 길로 갑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의미’를 말한 빅터 프랭클의 고백에 따르면, 철조망 밖에 피어나는 들풀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본 사람들은 매일 같이 조금씩 살아났고, 그걸 보지 못하는 사람은 조금씩 매일 죽어갔다고 합니다.

이웃사랑의 태도
세 번째의 사랑은 이웃과 함께 사는 사랑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사랑 나눔은 곧 생명 나눔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에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태도가 있습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태도입니다. 전자는 살인이고 후자는 자살입니다. 이는 반생명적인 태도입니다. 또한 “너 죽고 나 살자”는 태도가 있습니다. 전자는 살인이고 후자는 적대적 증오입니다. 철저한 이기주의입니다.
이제 우리가 선택하고 즐겨야 할 단 한 가지는 곧 “너도 살고 나도 살자”의 공생의 태도이고 상생의 윤리일 것입니다. 이를 사랑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넌 나를 사랑하고 난 너를 사랑하고”의 심포니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자는 생명의 합창입니다. 이 사랑의 심포니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하십니다.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 목사. 현재 국민문화재단과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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