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보여주기'에 대해 : 써나쌤이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잘 지내고 있나요? 이 인사조차 무색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잠밥먹’(코로나 잠잠하면 밥 한 번 먹자의 줄임말)이라는 인사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도 하죠. 작은 스마트폰을 통해 소식을 확인하다 보니 더욱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쟤는 그래도 잘 사네, 쟤는 그래도 취직했네, 쟤는 여행도 가네. 서로 밥 한번 함께 먹지도 않는 ‘쟤’들의 소식을 너무 쉽게 접하게 되잖아요.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것 같은 기분. 저도 알고, 공감해요. 하지만 걱정이 되기도 해요. ‘쟤’들을 자꾸 보다 보면 ‘쟤’들처럼 보여주고 싶어지잖아요.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 한 청년이 이런 고민을 얘기한 적이 있어요.
- 교회에서 친구 둘이 같이 유럽을 다녀왔는데, 그 친구들이 올리는 사진을 보며 정말 많은 친구들이 부러워했어요. 그 이후에 청년부 친구들 대다수의 꿈이 유럽에 가는 게 되어버렸어요. 저도 그렇고요.

내가 물었어요.
- 유럽에 가는 게 꿈이 된 거 맞아? 유럽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게 꿈이 된 게 아니고?
청년은 멋쩍게 웃으며 맞는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그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유럽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올리고 싶을 수 있죠. 나도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을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린 어쩌다 보여주는 것까지 애쓰며 살게 되었을까요? 보여주지 않아도 애쓰며 살아야 하고, 그것만으로도 벅차고 힘이 드는데 말이에요. 게다가 왜 보여주면서도 절망할까요? 그건 아마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나’와 ‘쟤’의 비교에서 왔기 때문일 거예요. ‘나’를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쟤’보다 못하지 않은 나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니까요. 게다가 그 비교가 정당하지도 않잖아요. 삶의 링 위에 ‘나’와 ‘쟤’가 서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전부와 ‘쟤’의 일부가 서 있는 것이니까요. ‘쟤’가 올린 석양 사진은 멋지고 아름답기만 하잖아요. 하지만 석양을 보는 ‘나’의 삶은 그렇지 못해요. 석양을 보러 가다가 쓰레기를 봤잖아요. 길을 찾아 가다가 옷이 땀범벅이 되기도 했고요. 바쁜 업무 중에 간신히 낸 휴가라 여전히 피곤에 잠식되어 있는 상태죠. 드디어 석양을 발견했지만 석양만 아름다워요. 앞에는 석양이 있지만 뒤에는 모텔과 술집들이 즐비하거든요. 그래서 ‘쟤’가 부러운 거예요. ‘나’의 삶은 앵글 바깥의 일들을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쟤’의 사진에서는 앵글 안의 모습만 보이니까요.

알고 있죠? 우리는 앵글 안을 찍어 올리기도 하지만, 앵글 바깥의 삶을 살아간다는 걸. 삶은 브이로그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예요. 아름다울 수만은 없죠. 하지만 ‘아름다움’이 보여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얘기는 달라져요. 삶이 훨씬 더 아름다울 수도 있죠. 희로애락의 이야기가 있고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죠. 정방형 안에 담을 수 없는 파노라마가 이어져요. 앞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쟤’와 더불어 살 거예요. 하지만 단 하나인 ‘나’를 먼저 인정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나’는 보여질 수도 있지만, 보여지지 않을 때 더욱 ‘나’이기를 바라요. 부족한 편지를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요. 다음에는 우리, 정방형으로 만나요! 그리고 파노라마로 더욱 진하게 만나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절망마저 아름다운 그대들의 안전을 기도하며.

오선화
작가이자 상담사로 살고 있으며, 청소년들과 밥 먹는 사람 ‘써나쌤’으로 알려져 있다. 지은 책으로는, <너는 문제없어>, <그저 과정일 뿐이에요> 등이 있으며 유튜브 ‘써나쌤tv’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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