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보여주기'에 대해 : 교육의 봄 송인수 대표

부모가 제시하는 끝없는 기준
몇 년 전 한 외고생이 자살을 하면서 남긴 유서에는 단 네 글자만 적혀 있었다. ‘이제 됐어?’ 엄마가 요구하는 성적에 도달한 직후 아이는 자살을 택했다고 한다. 투신하는 순간까지 다른 부모들이 부러워하는 우등생이었다는 이 아이는 성적 강박감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 성적을 내고 자살을 택한 것이다.
부모가 제시하는 끝없는 기준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숨이 차도록 뛰던 아이가 더 이상 숨쉬기를 멈추고 남긴 한 마디는 이 땅의 부모들이 내내 짚어보며 살아야 할 말이다.
출신학교에 의존하지 않는 기업의 채용 문화로 미래 사회에 필요한 사람을 기르자는 운동을 벌이는 ‘교육의 봄’ 송인수 대표(사진)를 만나 ‘보여주기’에 몰입한 부모들의 교육과 그로 인한 결과, 변화해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보여주기’는 한국사회에서 매우 익숙한 문화입니다. 이것은 유교사회에서 체면문화를 중시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종교·문화적 배경이 오래되어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출세하는 것을 성공으로 보는, 그것을 ‘진짜 나’라고 보는 생각과 욕망에 대해 잘못됐다고 인식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어쩜 모두가 그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니까요.”
“결국 자신이 누군가를 판단할 때 소득, 직장, 아파트 평수, 자녀의 출신대학 등을 기준삼고 있다면 남들도 자신을 그렇게 판단하겠구나 싶어 더 열심히 ‘보이는 나’를 꾸미게 되는 것이지요.”

보이기 위해 ‘나’를 잃어버렸다
송 대표는 2013년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 속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하버드대학생 이 강남의 학원가를 찾아 밤늦도록 공부하는 초등학교 여학생을 인터뷰했는데, 그 아이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를 묻자 ‘결혼을 잘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는 내용이었다.
“좋은 대학, 결혼, 직장으로 이어지는 겉으로 보이는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인 것이지요. ‘나의 나 됨’은 그 과정에서 무시됩니다. 결국 남에게 보이기 위해 ‘나를 잃어버린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입시 경쟁, 학벌 추구 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아이들은 보여줄 수 없는 ‘자기됨’에 대한 귀중함을 알지도 못하고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삶 속에서는 보이는 내가 언제나 괜찮아야 하며,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언제나 우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내면화 되는 것. 행복의 기준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밖에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거기에 맞춰서 남보다 높아져야지 그나마 ‘잠정적인 행복’이라도 유지하고 살게 됩니다.”

엄마의 나침반’을 버려라
“한 명문대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기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이란 질문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엄마’라는 대답을 내놓았고, 이어 너희 삶의 계획을 밝히라고 요구하자 침묵했습니다. 자기 삶의 원칙, 지향점을 살리게 되면 엄마가 너무 불쌍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나침반’을 버려야 한다고 하자, 학생들은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씁쓸한 이야기를 전하며 송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의 원칙, 기대에 맞추고 그것을 내면화 하지요. 문제는 보여지는 측면만을 강조하는 폭력적인 가치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아이에게 들어오면 아이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니 부모가 그 폭력적 가치와 결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아주 어려운 작업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제대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만 아이를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봐주며 분리해야 하는 것. 보여주기의 삶을 살지 않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려면 보여지지 않는 내면의 것을 아이들이 마음껏 탐색하고 찾게 해줘야 함을 부모가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반드시 정신적 ‘여백’이 아이에게 필요합니다. 아이가 판단하고 선택해서 주체로서 결정할 때 부모라고 해도 함부로 침범하면 안 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부모가 그 주체성을 허용해야 아이들은 ‘자신만의 나침반’을 마련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독립된 인생의 결정권자로 자신을 세워가려고 할 때 그것을 존중해줘야 하는 것. 결정적인 순간에만 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소에는 많은 영역에서 여백을 많이 주다가 결정적 순간에 부모가 지도하면 오히려 자녀들이 훨씬 잘 받아들인다고.
“아이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기 힘이 있으면 타인에게 관심이 생깁니다. 더 나아가 고통 받는 타인을 알아보고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그것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되고 그 필요에 응답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요즘 직업윤리가 없는 이유는 바로 수단으로만, 욕망을 위한 도구로만 사람을 바라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 받으며, 좋은 습관과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놔 두어야 합니다.”

세상을 헤쳐 나갈 힘 길러줘야
송 대표는 이어 “게다가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기업은 이제 학벌이 아니라 직무에 적합한 소양과 능력을 요구하는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보이는 스펙만을 쌓은 아이들은 어느날 경쟁에서 밀립니다. 지금 이후 사회는 계속 배워가는 ‘지적 겸손’을 갖고 있는 사람이냐, 나의 성공을 넘어 타인을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냐를 가늠하고 있습니다. 바로 ‘보이지 않는 영역’의 능력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능력은 초중고 시기에 길러지는 것으로 자기 주체성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데, 자신에 대한 풍요로운 자긍심과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공감하고 소통하며 이뤄내는 것이다.
“보여주기식 공부에 익숙한 아이들은 보여줄 것이 없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정답 없이 세상을 헤쳐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부모들이 생각을 바꿀 때가 왔습니다.”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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