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 글 이로, 그림 이나영, 난다, 2018년

지금 생각하면 촌스러운 느낌인데, 예전에는 데이트 장소로 경양식 레스토랑이 제격이었다. 빵이나 밥을 선택하면 수프와 샐러드가 나오고, 이어서 주요리 돈가스를 한 점씩 썰어 입에 넣는 이 모든 과정은 정말 낭만적이기 그지없었다.
돈가스는 개화기 일본인들이 서양인들처럼 덩치를 키우려고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요리였다. 수백 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기에 낯설었던 돼지고기를 수월하게 먹을 수 있게 익숙한 생선튀김처럼 기름에 튀겨서 내놓은 것이다. 그러니 돈가스는 서양 음식이라기보다는 일본 음식에 가까운데도 그 시절의 나는 돈가스를 입에 넣으면서 프랑스 파리나 미국 뉴욕 여행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런 핑크빛 돈가스는 엄마가 경양식 가게를 운영하면서 빛이 바랬다. 처음에는 매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질려버려 어느 날 여자 친구가 돈가스를 먹자고 말했을 때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음에 드는 여자 친구 앞에서 이 정도 배려는 당연한 일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그날의 돈가스는 물렸던 맛이 아니었고, 그날부터 돈가스는 더 이상 꺼려지는 메뉴가 아니게 되었다.

이쯤에서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을 쓴 저자 이로 씨의 ‘도구’는 자세히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돈가스만, 일본의 돈가스 가게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돈가스와 상관없는 생각마저 돈가스가 불러오죠.” 정말이지 이 책을 읽으면서 구구절절 돈가스에 대한 나의 기억마저도 카세트테이프 되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되돌아갔다.
장충동에 위치한 회사를 다닐 때 원조 족발집보다 돈가스 가게를 자주 갔는데…, 회사 근처 사거리 주차장 건물 지하에 있던 경양식집 이름은 뭐였더라, 대학교 정문에서 나와서 오른쪽에 있던 경양식 가게는 ‘로즈~어쩌고저쩌고’이었던 것 같은데…, 부천역 근처에서 엄마가 하던 가게 이름은 ‘탈무드’였지? 유대인들에게 ‘정결 음식’이라는 의미의 ‘코셔’ 관점에서 보면 돼지고기는 먹지 못하는 음식인데, ‘탈무드’라는 가게 이름을 내걸고 돈가스를 팔았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난다.

이 책에 실린 그림이 어딘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미술관 일을 처음 하면서 실크스크린 판화 프로그램 만들었을 때 도와주었던 이나영 선생님이 그렸구만. 저자 이로 씨는 와우북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 바로 옆 부스여서 함께 웃고 떠들고 즐거웠던 적이 있는데, 다들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상, 돈가스와 별 상관없는 나의 추억팔이까지 소환한 이유는 ‘쓸데없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서 요리에 대한 쓸모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과 손뼉 치며 나누는 글’이 되기를 바란 일본 돈가스 탐방기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를 읽은 덕분이다. 모쪼록 여러분도 돈가스로 추억여행 한 번 떠나보시기를~.

P.S. 인터넷에서는 무엇이든 다 검색이 되는 줄 알았는데 과거 돈가스 가게들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조금 아쉽기도 하고, 덕분에 더욱 아련해져서 좋기도 하고….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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