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농사의 승패는 전지작업에 있다. 제때에 가지를 치고, 꽃을 솎아주어야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실한 포도를 맺기 위해서 농부는 이른 봄부터 전지작업을 한다. 새순에서 맺힌 포도송이라야 제대로 자라기 때문이다.
사과나무와 배나무는 가지치기 외에도 꽃을 솎아준다. 피어난 꽃마다 열매를 맺으면, 뿌리가 흡수한 영양분이 분산되면서 열매들이 자잘하기 때문이다. 옥수숫대 하나에서는 한 개의 옥수수를 거둔다. 물론, 두어 개를 거둘 수도 있지만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익어도 자잘하다. 그래서 종자로 삼을 옥수수는 나중에 나오는 것들은 꺾어버린다. 옥수숫대 하나에서 옥수수 하나.
전지작업, 가치지기, 솎아내기 같은 것들은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시련이다. 그러나 농부들은 무지막지하지 않다. 그들이 죽을 만큼, 견디지 못할 만큼 잘라내지 않는다. 꼭 필요한 만큼,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만큼만 남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해마다 실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

시골 사는 형님 댁 뜰에는 전지작업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꽃을 따주지도 않는 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배는 많이 열리지만, 자잘하고 먹을 것이 없다. 새들의 몫이라고, 자연농법이라고 애써 위로하지만, 해마다 나무는 높아지고 열매는 자잘해져서 돌배나무가 될 판이다.
우리가 기르는 과수들도 이럴진대, 우리는 나를 만들기 위해 어떤 수고를 하는가? 잘라버리고, 솎아내야 할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끝내 소유함으로 돌배만도 못한 삶의 열매를 거두는 것은 아닌가?

김민수
한남교회 담임목사. 작은 들꽃들과 소통을 하면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세상에 전하고 있는데, 비주얼 에세이집 <달팽이 걸음으로 제주를 보다>와 365 풀꽃묵상집 <하나님 거기 계셨군요>등을 펴낸 바 있다. 살림이 진행하는 ‘창조절 50 생태묵상’ 캠페인 묵상글과 사진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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