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은총의 도구, 홀로 있을 때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어

고독한 마음 가꾸기
고독은 은총의 도구… 홀로 있을 때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어

나는 고독한 마음을 사랑한다. 고독한 마음은 외로운 마음이다. 고독이 깊어질 때 외로움이 깊어진다. 외로움은 쓸쓸한 마음이다. 고독한 마음은 고통스럽다. 사실 고독한 마음을 좋아하긴 쉽지 않다. 우리는 어떠하든지 고독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고독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하려고 몸부림친다. 친구를 찾아 나서고, 전화에 매달리기도 한다. 음악을 듣고, 드라마에 몰입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고독으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다.
고독은 인간의 실존이다. 고독은 우리 존재의 한 부분이다. 피할 수 없는 고독이라면 고독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고독은 고통스럽지만 고독은 유익하다. 고독은 우리를 사색의 길로 인도해 준다. 사색이 없으면 사상이 없다. 우리의 생각은 고독을 통해 사색의 문으로 들어간다. 고독을 통해 사색은 깊어지고, 사색이 깊어질 때 우리의 사색은 사상이 된다.
고독은 생각을 익히는 은총의 도구다. 밥이 뜸이 들 때 맛이 있는 것처럼, 생각은 고독을 통해 맛이 깊어진다. 사색하는 동안 생각이 뜸이 든다. 사색이 승화될 때 묵상이 된다. 묵상이 깊어질 때 기도가 된다. 단순한 사색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의 영혼은 기도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나는 고독을 통해 홀로 있는 시간을 갖는다. 헨리 나우웬은 고독을 외로움이라 불렀다. 그는 외로움에서 홀로 있음으로 뻗어가는 것이 영성 생활이라고 말한다. 광야가 변하여 물댄동산이 되는 순간이 바로 외로움에서 홀로 있음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홀로 있음은 고독을 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홀로 있음은 고독이 거룩해진 모습이다.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하면 고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외로우신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독에 머물지 않으셨다. 고독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셨다. 고독을 통해 고독한 인간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고독하셨기에 고독한 사람들의 마음의 아픔을 아신다. 고독한 영혼을 치유해 주신다.
고독한 마음을 잘 가꾸면 보배가 된다. 고독은 사색으로 들어가는 도구다. 묵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깊은 기도로 들어가는 길이다. 고독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 말라. 고독은 지혜와 영감의 원천이다. 부디 고독 때문에 외로워하지 말고 오히려 고독 때문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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