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다시, 봄 : 새 봄, 새 학년

‘책을 또 봐? 이제 쓸 데도 없고 알아줄 사람도 없어. 그저 하루하루 즐기면서 지내는 게 제일이야.’ 거기에 ‘건강이 최고지. 잘 먹고 운동하는 거 외에 뭐가 더 필요해.’

이런 말은 어느 정도 나이 든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안일하게 하는 일반적인 말이다.
정말 그럴까.

퀸 엘리자베스 2세 이야기
얼마 전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호기심을 일으키는 주제를 가진 드라마가 나왔다. 살아있는 왕조를 다룬 ‘The crown’. 이 시리즈를 보며 많은 이들이 현대사를 기억해내며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왕실의 삶이 멀리서는 동화처럼 보이나 화려한 궁 안에 돌이킬 수 없는 애정결핍이 있고 욕망과 갈등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지나침이 있는 반대쪽엔 여지없이 부족이 있음을 매 회기(episode)마다 느끼게 된다. 다른 나라 역사다 보니 우리 이야기를 볼 때보다 감정 이입이 격해지지 않아 객관화해 관찰하며 면면들을 다시 짚을 수 있음이 좋은 점이다.
그중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중년이 되면서 자아를 깨달아가던 때 얘기다. 왕으로서 교양 있게 주요 인사들과 매일 접견해야 하는데 제대로 알아듣고 응대할 수 없음에 공허함을 느낀다. ‘아, 그렇군요’를 반복하며 적당히 꾸미다 지도해줄 교사를 찾게 된다.
“세계정세와 주요 현안을 들을 때 대답할 말을 몰라 불안해요. 화제를 강아지나 고양이 얘기로 돌리는 것도 더는 하고 싶지 않고요.”
“정말 답답하시겠습니다. 어릴 적 공부는 어떻게 얼마나 하셨나요?”
교사의 질문에 여왕이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가 묻자 ‘교양과 왕실 예절, 바느질’ 등 필요한 건 다 가르쳤고 영국헌법은 특별히 이튼 부학장이 교습하지 않았느냐며 뾰족하게 대답한다. 그러면서 총리나 장관들의 말을 못 알아듣기는 어머니 자신도, 아버지 선왕도 마찬가지였으니 여왕도 그냥 그렇게 살라고 했다. 충격적인 장면이다.
그때부터 엘리자베스 여왕은 학습 시간을 정해 공부하며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후 군주제를 비하하는 사람들로부터 ‘여왕이 원고 없이는 몇 문장도 말을 못 이어간다, 사회의 변화에 못 따라간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감을 찾은 그녀는 그 당사자와 비공식 만남을 갖고 권위를 내려놓을 방안과 변화하는 세계를 배우게 된다.

공부할 때 나타나는 능력
배움은 겸손한 자세와 알고자 하는 열의, 고요한 생활이 합쳐질 때 길이 열린다. 손쉽게는 자기 집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차례로 읽어가거나 스스로 시간을 통제하며 집중할 대상(언어, 그림, 악기, 글쓰기 등)을 찾아 배울 방법을 정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의 원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이다.
<혼공(혼자서 공부)의 힘> 저자 송인섭은 어떤 배움도 그 과정과 결과의 주도권을 자기 자신이 가지면 놀라운 효율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렇게 혼자 공부한 것은 대화를 통해 생각을 확장하고, 글로 적어 생각을 체계적으로 모을 수 있다(프란시스 러셀).
이어 러셀은 생각하는 기쁨을 주는 독서가 그 내용을 가지고 대화할 때 친밀함과 진지함을 갖게 하고, 일을 처리할 때 정확한 판단력을 준다고도 한다.

집중하기 힘들어요?
주의력 결핍증으로 불리는 ADHD. 아동들의 10%에서 나타나는 이 증상이 청소년기와 성인에게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놀라운 연구 결과다.
‘한국기독교상담학회지’에 발표된 김형숙의 논문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순서를 기다리기 어려워하고 운전 시 충동적이며, 예상치 못할 때 화를 내면서 예민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보상이 있는 일이나 TV, 컴퓨터에는 과도하게 몰입하면서 그 외에는 집중하지 못한다. 움직임이 불필요하게 나타나며 비판에 과민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산만한 태도로 인해 종종 실수가 나타나고 그것을 자책하면서도 ‘다 그래’라며 곧 일반화시킨다. 속으로 불안이 커져 두통을 앓는 사이클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울로 이어지거나 스트레스가 모여 예측할 수 없는 때에 분노를 발생한다.
한편 이것을 방지하려 심한 자기 검열을 하게 되므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쉽게 피곤해진다. 이들은 고요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며 늘 잡념이 많아 들은 말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 또는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지는가.
이제 그 대안을 찾아보기로 한다.
ADHD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는 천재에 속하는 유명인이 많이 있다. 이 말은 ‘창의성’이 있어 무언가를 잘 해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이런 부족함이 이들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부주의함, 심한 자기 검열, 급한 성미, 불안과 초조로 이어지는 생활이 가까운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증상이 심하지 않고 스스로 고칠 의지가 있다면 몇 가지 방안으로 개선을 시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책을 집중해서 읽기 어렵고 읽고도 금세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그래도 책을 읽으며 요약하고 정리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을 준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가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메모하는 것도 유익하므로 ̒자기 노트 갖기̓를 권한다. 또 요리나 미술 등 활동적인 취미에 자신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집중하는 가운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를 인식’하는 것,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기’ 등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 증상은 뇌의 호르몬 도파민과 관계되는 것으로 아동의 경우 적극적인 약물 치료와 행동 치료가 요구되나, 성인의 경우 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나아질 수 있다.

좋은 것을 담기 위해
우리 안에 선하고 좋은 것을 담기 위해서는 ‘덜 중요한 것’들을 비워야 한다. 쏟아지는 뉴스들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도 에너지도 기억의 용량도 다 차오르게 된다. 그래서 검증된 영화, 드라마를 통해 삶의 지혜와 철학을 배우고, 읽은 책을 기억해 얘기하며 새롭고 유익한 주제를 가져 친구 관계도 함께 발전시켜가는 게 필요하다. ‘배움’에 초점을 맞춰 살아가다 보면 누구를 만나도 배울수 있다. 함께 사색하며 익히고 나누면 그것은 자신의 것이 되는 것.
플라톤은 87세에 글을 쓰다가 펜을 손에 쥔 채 숨을 거두기까지 배우고 나누는 삶을 살았다. “나이 들어 육체의 힘이 약해져도 사는 동안 배움을 추구한 사람은 지혜로워져서 아름다운 세계로 들어간다.”
여기서 그가 말한 아름다움이란 물질을 넘어선 더 소중한 정신적 가치임은 말할 것도 없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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