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다시, 봄 : 생활여가연구소 옥성삼 소장

여가 전문가에게 듣다
유난히 춥고 울적했던 지난겨울. 여전히 찬바람이 일긴 하지만 마음속에는 봄바람이 분다. 다시 소생의 계절이다. 여기 팬데믹 여파로 망설이는 우리에게 짬을 내어 움직여 보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 “지금이 진정한 여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여가학 전문가, 옥성삼 박사(사진)다.
신학을 전공하고 여가학으로 석사, 여가 레저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신학을 기반으로 여가문화를 해석하는 필객이며 이야기꾼이다.
그가 말하는 놀이, 쉼, 여가는 과연 무엇일까?

여가 ‘다시 봄’
그는 쉽고 체계적으로 여가를 풀어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여가는 그런 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여가를 노동 이후의 쉬는 시간이라든가, 생산성을 높여주는 수단으로 치부하죠. 여가의 의미를 격하하고 주변화 시킨 왜곡된 개념입니다. 여가에는 본질적인 삶의 가치가 있어요.”

본질적인 삶의 가치?
서구의 여가학에는 두 가지 원류가 있다고 한다. 그리스-로마와 히브리. 어원적으로 보면 여가는 특히 그리스-로마계통에서 옥티움(멍때리기), 리세레(자유로움 누릴 권리), 스콜라(명상, 진리의 추구)에서 기인하였다. 종교 중심 사회인 중세로 넘어오면서 여기에 히브리계통이 더해졌다. 창세기 2장의 안식일과 출애굽기의 십계명이 그 배경으로 창조 후의 안식과 구원의 기쁨이 그것이다.
“창세기는 안식일을 통해 복을 주고 ‘거룩’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거룩은 안식, 모든 창조적인 활동이 멈춰지는 의미죠. 그냥 멍하니 쉬는 게 아니라 창조 세계를 보며 하나님과 코이노니아를 갖는 시간을 뜻해요. ‘참 좋았더라!’ 창조주를 기억하고 창조물을 감상하면서 함께 노닌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로마에서 출발한 서구의 여가에는 하나님, 인간, 창조물이 함께 어우러진다는 개념까지 담고 있다. 옥 박사는 현대 여가의 본질적인 개념도 이 두 가지 원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 때부터 여가 본래 의미는 왜곡되기 시작했다. 쉬어야 일을 할 수 있고 놀아야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는 노동의 종속된 개념으로 전락한 것이다. 일, 쉼, 여가에 ‘우열’이 생겼다. 식민시절과 전쟁을 거치며 뒤늦게 산업화를 시작한 우리 역시 그러했다. 기를 써서 먹고살다 보니 여가는 배부른 자만이 누리는 호사이거나 무능한 사람들의 한심한 모습쯤으로 비쳤다. 쉬고 노는 삶을 금기시하는 풍토까지 생겼다.

여가의 쓸모
여가의 원형을 통해 본질적 의미를 확인했다면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인류가 여가를 통해 궁극적으로 누린 것은 인간 자신의 본래적 가치였어요. 자신이 누군지, 잘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발견하는 유일한 통로가 여가였죠. 인간의 가치와 진, 선, 미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영역도 바로 여가입니다.”
여가라는 삶의 영역에서 창의적인, 인간 본래의 가치가 나온다고 한다. 이것이 여가의 특징이자 여가를 통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쓸모다. 인간 본래의 문제를 다루는 상당히 심오한 성찰의 삶이다. 따라서 여가를 바르게 알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은 생계와 성공을 위해 달리는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고 한다.

어떻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다. 어떻게 시작하고 실천할 것인가. 본래적 자신을 만나는 시간으로서의 여가는 그 속성에 비해 시작이 난해하지만은 않다. 거창하지도 않았다.
“여가의 한자 표기에는 남는 시간, 즉 자투리, 틈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가의 출발은 틈, 틈새에서 시작되죠. 틈이란 하찮은 것이라고요? 아니요. 자신과 삶을 이해하는 큰 기회의 첫걸음입니다.”

옥 박사는 여가를 어떻게 시작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삶의 작은 틈새와 함께 ‘시간의 알박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롯이 내 삶을 돌아보며 행복한 자아를 찾는 시간의 확보가 필수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6시간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떼어 놓는 겁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는 중요치 않아요. 오직 자신만을 위한 틈, 시간을 잡아 두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이 여가의 시작이죠.”
하루 30분도 좋으니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연락도 받지 말아야 한다. 철저한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의 확보. 처음엔 멍하니 있어도 좋다. 무엇보다 여가라는 것이 습관화되는 게 중요하다. 시간을 마련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현재 상황에 맞게 실행하면 된다. 책을 봐도 좋고 시장에 들러도 좋고 산책을 해도 좋다. 그렇게 계속 여가를 갖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생기고 구체적인 계획이 잡히기 시작한다.
“가볍게, 부담 없이 시작하세요. 무조건 결단을 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팬데믹, 여가의 기회
옥 박사는 팬데믹 시대야말로 여가를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멈춰선 일상은 자신의 삶 속 ‘틈새’를 보게 만든 전환점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가 가져온 탈중심화 현상도 마찬가지. 핫한 곳으로 사람들이 쏠리던 그간의 흐름에 제동이 걸렸다. 그 결과 분산됐던 시선이 내게로 향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여가는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따로 마련해서 가져야 하는 것. 자신을 살피고 삶을 돌아봄으로써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영역이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팬데믹을 통해 주어진 일상의 틈을 경제적인 만회에만 소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비대면의 환경은 자신을 성찰하고 삶을 가꿀 좋은 기회입니다. 나를 만나러 가는 새로운 봄날이 될 수 있습니다.”
여가 생활을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면 어떨까. 우리 삶에 다시 봄을 찾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진·글=김희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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