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저녁마다 굶는 게 완전히 습관이 되었다.
그 대신 그는 앞으로 생길 외투를 늘 마음속에 그리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섭취했다”


욕망이 마음에 잠입하면 삶은 요란해집니다. 욕망이 집착을 만들고, 집착은 탐욕으로 변신하여 삶을 무겁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은 결국 추락한다”는 경고가 현실이 됩니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은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속에 실려 있는 5개의 작품 중 <외투>(1842)에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인간내면에 은둔하고 있는 ‘욕망뭉치’에 대해 신랄하게 고발합니다.

시골 관청에서 공문서 정리업무를 하는 아카키는 상사에게는 모욕을, 동료에게는 조롱을 당하는 ‘9등 문관’입니다. “키는 작고 얼굴은 곰보이며, 눈은 지나친 근시이고, 이마는 조금 벗겨 있고 안색은 치질 환자처럼 보였다”라는 작가의 묘사에서 보듯 그의 외모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동료로부터 ‘덮개, 내복’이라는 조롱을 받는 아카키의 낡은 외투는 “함부로 대해도 될 만한 사람”이라는 그의 평판을 가중시킵니다.
그럼에도 아카키는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합니다. 그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보물은 펜과 종이. 관청에서 기안한 공문서 초안을 정확한 글씨체로 작성하는 업무에 긍지를 갖는 아카키로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과를 마치고 귀가해도 간단한 식사 이후 다시 공문서류를 작성하는 일을 즐깁니다.

남들에게는 소심한 삶으로 비쳐지지만, 그의 일상이 깨진 것은 어느 추운 날 아침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등과 어깨에 추위를 느껴 외투를 살펴보니 너무 낡아 있었습니다. 재봉사를 찾아가나 그로부터 ‘수선불가’니 새 외투를 맞추라며 제작비용으로 80루블을 요구합니다. 새 외투를 맞추기로 결심하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그는 저녁을 거르고 촛불은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고, 세탁비를 줄이기 위해 집에서는 간단한 속옷만 입고 지냅니다. 그러나 새 외투를 장만한다는 즐거움에 행복한 아카키에게 이런 불편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녁마다 굶는 게 완전히 습관이 되었다. 그 대신 그는 앞으로 생길 외투를 늘 마음속에 그리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섭취했다.”
그의 얼굴에는 전에 볼 수 없던 자신감이 흐르고 눈에는 불꽃이 튈만큼 생동감이 넘칩니다. ‘곧 생길 새 외투 하나’만으로도 삶이 급격히 새로워집니다. 이후 새 외투를 전달받은 아카키는 황홀해 합니다. 또한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하자 동료들의 축하가 쏟아졌고 계장 대리는 저녁식사에 초대합니다. 계장대리의 집에서 잡답과 카드놀이만 펼쳐지자 지루해진 아카키는 그 집을 빠져나옵니다. 작가는 계장대리의 집을 나올 때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새 외투를 본 아카키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턴 후 입고 나왔다”라고 기술하여 새 외투가 당할 앞으로의 불길한 상황을 암시해줍니다.
밖을 나온 아카키가 집으로 향할 때 어떤 사람들이 그를 폭행한 후 새 외투를 강탈해갑니다. 아카키는 도움을 청하지만 경찰서장은 무관심하고, 오만한 고위층인사는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찾아온 그를 절차상 원칙을 어긴 무례한 관리라며 강하게 질책합니다. 아카키는 분노와 억울함에 절망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열병과 오한으로 신음합니다. 병세는 하루 만에 극도로 깊어져 결국 아카키는 숨을 거둡니다.
그가 남긴 유물은 “거위 깃털 펜 한 다발, 관공서 서식 용지 한 묶음, 양말 세 켤레, 바지에서 떨어진 단추 두세 개, 그리고 헌 외투”뿐이었습니다. 아카키는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매장됩니다.
아카키의 허무한 죽음으로 이 소설은 끝나지만, 작가는 이후 특별한 에피소드를 첨언합니다.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페테르부르크 곳곳에서 아카키의 유령이 나타나 사람들의 외투를 강탈해간다는 소문 말입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외투’는 사회적인 신분을 증명하는 도구였습니다. 헌 외투를 입었던 아카키가 단 한 번도 동료의 환대를 받은 적이 없다가 ‘새 외투’를 마련하면서부터 인간대우를 받게 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따라서 작품 속 ‘외투’는 단순한 의복이 아니었습니다. 값비싼 외투는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신분장벽을 뛰어넘게 해주는 강한 권력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외투’라는 화려한 껍질을 제복(制服) 삼아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아카키의 후예들’이 분주한 시절입니다.
그래서 삶의 한기(寒氣)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외투를 입혀주는 새로운 사람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새로운 사람에 그대가 속하길 희망합니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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