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최은(사진)의 <제인 오스틴 무비 클럽>이 출간되었다. 영화 혹은 문학,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그것도 아니면 배우인 키이라 나이틀리나 제임스 맥어보이 어느 하나만 애정해도 열광할 책이다. 제인 오스틴의 ‘12권의 책’과 그 책을 원작으로 삼은 ‘26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담은 책’이기 때문.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가지고 재생산되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피며 성실하게 해석하고 있다. ‘오스틴 덕후’ 최은 평론가를 만나 직접 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제인 오스틴 무비 클럽>이 첫 책이라고 해서 놀랐다. 서문에 “첫 책은 써야 하는 글보다는 쓰고 싶은 글들로 채우고 싶은 바람”을 말했는데, 왜 제인 오스틴이었나.
- 일단은 정말 순수하게 문학이 영화화된 작품에 매력을 느껴서였다. 원작과 시대가 달라지고, 국가나 문화적 배경이 달라지고, 문자언어가 영상언어가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의 포인트와 이유를 추론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제인 오스틴은 전작이 장편소설로는 여섯 편인데, 그 여섯 편이 전부 영화화된 작가여서 전작을 다루기 좋았고, 영화전공자로서 문학을 다루다 보니 쉽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준비했다.

▲ 이 책을 위해 영국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작가가 정말 공들여 이야기를 풀어내 또 하나의 ‘제인 오스틴 각색’ 작품으로서 오스틴 읽기의 재미를 극대화해주는 것 같다. 제인 오스틴에 대한 편견도 많이 깨주고. 그냥 흔한 예쁜 로맨스 작품이라는 편견 말이다.
- 제인 오스틴 팬들 중 지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좋아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일종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를 갖고 있다. ‘제인아이트’(제인 오스틴 추종자들)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 백인 여성이지만 그 외에 남성도 있고, 페미니스트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오스틴을 매력적으로 느끼면서도 거부하는 그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 또한 처음 집필을 계획했을 때만 해도 결혼 이야기를 쓰는 오스틴이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고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페미니스트 작가의 저작에서 오스틴이 자주 언급되는 걸 보면서 오스틴 소설이 이 시대에 더 의미 있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다.
모든 게 ‘결혼’으로 끝나는 신분 상승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실은 오스틴이 여성 독자가 많은 ‘소설’이라는 매체로 이야기했다는 점이 중요한 지점이다. 오늘날의 대중영화 같은 역할을 당시 오스틴의 소설이 해냈다고나 할까. 대중영화는 배우 연기부터 스토리까지 관객들 안에 생산적인 논의를 일으키는데, 오스틴이 당시에 그런 작업을 한 거다.

▲ 제인 오스틴을 통해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전하고 싶은 주제에 대한 ‘말하기 방식’, 두 번째는 천박하거나 악한 세계를 대하는 태도. 그 방식과 태도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 먼저 있었다. 자기 확신을 가진 의견에 대해서 상황이 호의적이지 않을 때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한편 공격적으로 해야만 충분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딜레마가 많았다. 그런데 오스틴은 자기 기준은 분명했지만 어떤 사람을 바라볼 때는 먼저, 그가 ‘왜 그랬을까’를 생각했다. <오만과 편견>의 샬롯에 대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엘리자베스는 샬롯이 왜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할까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국 샬롯만의 방식을 인정하게 된다. 오스틴에게 오늘날 가져와야 할 것은 플롯과 주인공 캐릭터만이 아니고 그렇게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품는 태도’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시절에 중요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 200년이 지난 후 영화와 드라마가 오스틴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지점을 친절하게 해석한 내용들이 재미있었다. 특히 <맨스필드 파크>를 20세기 감수성으로 영화화한 로제마 감독의 영화 <맨스필드 파크> 해석이 흥미로웠다.
- (웃음) 그 부분은 굉장히 공들여서 쓴 부분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독자를 표면적 독자와 더 나아가는 독자로 나눴는데, 제인 오스틴 책은 이 두 가지가 다 가능하다. 완벽하게 자기 시대에 맞아떨어지는 서사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 최선을 다해 분투했던 소설가의 작업에 대해, 다음 세대는 그때의 그 정신이 했던 일을 오늘날 영화로 만들면 어떠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더 나아가는 것이다. 오스틴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영화들은 그 안에 ‘더 나아갈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만들 수 있었던 거다. 이 책에 실은 영화들은 최소한 그런 작품들이라고 보시면 된다.

▲ 오스틴에게서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19세기 초에 비혼을 택하고 생계를 위해 글을 썼던 오스틴이 21세기 여성들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 여행 가서 보니 오스틴이 비혼이었지만 퀼트도 하고 남자 형제들을 위한 옷과 이불도 만들고 그랬더라. 그래도 언니 카산드라가 동생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배려도 많이 해주었다. 비혼이었지만 누군가 돕는 여성이 있었고, 그나마 중간층 여성이어서 글쓰기가 가능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기 방이 없어서 거실에 탁자를 두고 글을 썼다. 거기서 오스틴이 꼼꼼하게 일상을 기록했기에 여성들이 어떤 형편이었고 연애는 어떻게 했는지가 남게 된 거다. SNS같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에 자기 이야기를 축적하는 것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드니까.

▲ 오스틴 입문은 어떤 책 혹은 영화로 하면 좋겠는지?
- 일단 영화 <비커밍 제인>을 보시면 작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재미있고 매력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영화 <레이디 수잔>이다. 오스틴 작품이 이렇게 재미있구나를 느끼시고 다음 작품 찾아보시면 좋겠다.

최은 작가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대중들이 술술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길, 더 나아가 다른 작가 연구로 이어지는 기반이 되는 책이기를 또한 바란다고.

사진·글=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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