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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함을 견디는 기다림
특집 - '기다림'
[251호] 2021년 02월 01일 (월) 전영혜 @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사는가
기다리는 것은, 삶의 과정 가운데 작은 결과들을 원하며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순조로운 길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음도 알기에 마음 졸이는 것이다.

고도(godot)를 기다리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두 사람이 몸을 비틀고 한숨을 쉬면서 기다리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들이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모르는 가운데 놀이도 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도 붙여가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에서 피신해 지내던 중 인간의 삶을 이런 ‘기다림’이라 정의해 본 것이다. ‘고도’는 사람이지만 잘 모를 희망을 뜻하는 것으로, 이들은 “그만 갈까?”라고 중간에 말해보지만, 기다리는 것을 접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의 매일 매시간 기다리는 삶도 어떤 모습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양치기 목동은 왜 거짓말을 했을까
혼자 거친 언덕에서 양을 돌보는 소년, 그는 양이 아닌 사람과 말하고 싶었을 거다. 그래서 사람이 보이기를 기다렸을지 모른다. 온종일 양들과 지내며 저녁을 기다리다가 심심해서 소리쳐 본 “늑대가 나타났다!”. 그 말에 한두 사람도 아니고 여럿이 뛰어나오니 거짓말이 놀이가 된 것이리라.
우물 파는 사람 이야기도 와 닿는다. 수맥이 있으나 확신할 수 없는 결과 앞에 땅파기를 시작하는 이들은 일하는 사람에게 1미터 당 얼마씩 주기로 한다. 물소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예상한 깊이까지는 여유로움이 유지되나, 그것을 넘어가면 마음 졸이며 선택할 시간이 된다. 재정적인 문제와 필요성 앞에서 더 깊이 팔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곳에 시작할 것인가.

우리 한계를 넘는 기다림
문득 아이를 기다리는 가정이 많아짐을 본다. 생명의 귀함을 알지 못했던 베이비부머 시대가 채 지나가기 전에 임신이 어려운 젊은이들을 보며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생명과 환경 문제로 접근해가면 모두가 직간접 원인 제공자가 되고 그 피해를 저항력이 약한 이들이 받는 현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들을 바라보는 눈이 ‘무언가 부족’하다는 편견으로 더해지면 그 기다림은 더 힘들 것임도 알아야 한다.
품위 있고 아름다운 임신을 꿈꾸던 작가 벨 보그스가 임신과 출산에 관한 에세이 <기다림의 기술>을 내며 시험관(IVF)을 통해 아기를 갖기까지 너무도 예민하고 조심스러웠던 여정을 상세히 적었다. 끊임없이 기다리는 삶에 ‘만약에’를 이어가며 상상 속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이들을 이해하기에 꽤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들의 매일은 자연스러운 노력이 아니라 혼신을 기울여 선택하는 발걸음임을 알게 되며 더욱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나는 얘기는,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들의 아내들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사랑을 듬뿍 받지만 세 여인 모두 아이를 갖지 못해 매우 오랫동안 기다림의 때를 지냈다는 것이다. 사라는 120년 일생 가운데 90세가 넘도록 기다리고 기다려 아들 하나를 얻었고, 리브가도 이삭이 60세가 될 때 간구하여 두 아들을 얻는다. 야곱의 사랑 라헬은 어떤가. 아들을 낳는 언니를 시샘하며 죽고 싶다고까지 하다가 늦게야 요셉을 낳지 않았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특별한 번성은 이렇게 긴 기다림의 이어짐 가운데 이루어지는가 질문하게 된다.
이와 함께 정반대이면서 비슷한 일이 있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연로한 사람들 얘기다. 유언을 써보며 영정 사진을 찍고 생각과 말이 치아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 자신이 쓸모없고 심지어 짐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기다림’을 가까이서 보며 한없는 연민을 갖게 된다. 어느 정도 맑은 정신이 남아있는 힘겨운 상태의 노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신의 날수를 세어보기도 하고, 이미 낯선 사람이 된 초점 잃은 눈동자를 볼 때는 또 다른 안타까움에 잠기게 된다. 감히 둘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그 지루한 마지막 여정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과 인생의 날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 아닐지. 생명의 주인 앞에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질서, 그것을 바라보며 견디는 것이 기다리는 삶의 주제라 여긴다.

잘 기다리는 모습을 원한다면
‘사람을 기다려주는 것은 그 안의 고민이나 슬픔까지 공유하는 길이다. 그것은 관심에서 출발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 마음이다.’ (작가 박완서)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말로 관심을 표현하며 필요한 것을 센스 있게 공급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성장을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최선일 거다.
그런데 유독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마음의 불안 치수가 높은 사람으로 조바심 때문이다. 불분명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타고난 예민함도 있고, 살아오며 믿고 기대했던 일들의 좋은 결과를 맞이하지 못한 경험들이 기다림을 불안하게 만들어서다. ‘부정성 효과’라 불리는 ‘나쁜 기억’이 좋은 것보다 강하게 남아 필요 이상의 불안과 걱정을 갖게 한 것이다. 불안은 생존과 안녕을 위한 뇌의 본능적 반응이나, 정도를 넘어서면 에너지가 한곳으로 몰리며 신체화 현상 등으로 나타나게 한다.
그럼 이러한 불안을 낮추는 방법이 있을까.
불안을 낮추기 위해서는 ‘저(低)부정성 다이어트’를 하라고 권한다. 그것은 부정적인 소셜미디어를 의식적으로 피하며 뉴스에서 말하는 것만큼 우리 삶은 암울하게 되지 않을 거라 여기라는 것이다(존 티어니, 로이 F, 바우마 이스터 ‘부정성 편향’).
또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주의력을 모아 집중하는 일을 갖는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기다림에는 삶을 향한 것과 사라짐을 향한 것이 있다.
그 기다리는 과정에 고통이 있고 지루함이 있으나 바라며 견디는 것 외에 더 나은 길은 없다. 그 안에는 순응하는 마음과 겸허한 마음이 들어있고 주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바라는 아이 같은 모습이 담겨 있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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