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다림'

눈 내리던 어느 날, 서울역 광장에서 찍힌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되었다. 한 신문기자가 우연히 찍은 사진으로 한 남성이 눈을 맞고 있는 노숙인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입혀주고 장갑과 돈을 쥐어주는 모습이었다. ‘너무 추우니 커피 한 잔 사달라’는 부탁을 한 노숙인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들을 내준, 이름 모를 그 한 사람이 가져다 준 온기는 코로나로,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꽁꽁 얼어있던 마음을 녹여주었다.

노숙인에게 전한 도시락
어쩌면 사시사철이 겨울일지 모르는 노숙인들의 삶. 그래서인지 늘 두꺼운 점퍼와 이불짐이 한 가득이다.
그런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도시락을 벌써 1년 동안 만들어 전하는 이들이 있다. 만드는 사람, 전달하는 사람, 그리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사람, 모두 역할은 달라도 마음은 한 가지다.
아름다운동행 사무실에서 공간을 공유하는 강남은혜교회(변정미 목사). 변정미 목사는 강남역에서 수년간 복음을 전하면서, 강남역에도 노숙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남역, 고속터미널 등지에 노숙인들이 곳곳에 있으시더라고요. 대부분 사업에 실패하거나 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어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분들이지요.”
여러 해 동안 노숙인들을 보면서 따뜻한 밥 한 끼를 드리고 싶다, 함께 예배를 드려야겠다, 노숙인들이 혼자서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있으면 도와야 겠다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작은 교회이지만 마음을 먹고 ‘동행’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아보았다.
“아름다운동행 후원자이신 몽치네 식당 이혜순 사장님께 의논을 드렸어요. 식당에서 원래 저희 교회에 반찬 후원을 해주셨는데, 저희는 안 먹어도 좋으니 매주 월요일 도시락을 싸주시면 안 되겠냐고요.”
이혜순 사장은 흔쾌히 허락했다. 월요일 오후 4시가 되면 제육볶음, 계란말이, 김치, 국, 밥을 정성껏 준비한다. 노숙인들 대부분이 치아가 안 좋기에 부드러운 반찬을 잘게 썰어서 담는다. 지난해 2월 그렇게 시작된 도시락 나눔이 벌써 1년이 되었고, 도시락도 12개에서 24개로 늘어났다. 반찬과 도시락 용품을 제공하는 식당, 쌀을 지원해주는 사람, 도시락을 나르는 사람, 그밖의 물품을 기부하는 사람 등 모두 자기 자리에서 마음을 전한다.
“저희가 도시락을 싸고 있는데 식당에 오신 손님 가운데 보태라고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너무 감사하지요.”
이혜순 사장은 자신이 이거라도 할 수 있으니 감사할 뿐이라고 수줍게 이야기한다.

성경필사도 해요!
그렇게 나간 매주 월요일 저녁 6시 강남역 8번 출구.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키며 마스크를 한 후 노숙인들과 만나 예배를 드리고 도시락을 나눈다. 남으면 다음날 라면에 말아 드시라고 밥을 꾹꾹 눌러 담은 묵직하고도 따뜻한 도시락. 다리가 아파서 꼼짝 못하는 노숙인들에게는 직접 가져다 드린다. 그래서 이제는 서로를 기다리는 관계가 되었다고.
“처음에는 이름도 안 가르쳐주던 분들이 1년이란 시간이 지나니 속 얘기도 하며, 도움도 구체적으로 요청하게 되었지요.”
변정미 목사는 그 도움에 구체적으로 답을 한다. 옷과 생필품을 후원받아 전달하고 행정적인 절차를 몰라 지원을 못 받는 이들을 연결시켜준다. 밤이고 낮이고 연락이 오면 최선을 다해서 돕는다. 만나는 것은 월요일 저녁이지만 사실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사역이다.
그런 진심이 통했을까, 함께 성경을 읽어보자, 함께 성경을 써보자, 말씀을 외어보자는 변 목사의 권유에 노숙인들이 응답을 하기 시작했다. 성경을 써오고, 말씀을 암송하고. 상을 받기 위함도 있겠지만 에너지가 없는 노숙인들이 그렇게 도전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강남역에 있는 분들이 ‘사람들이 진짜 달라졌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하나님 형상으로 지어진 분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이분들의 성장을 기다린다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에요. 씨 뿌리고 물을 주면 자라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니까요.”

돕는 손길들 모여 함께 사역
이 따뜻한 도시락 나눔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변 목사는 샤워시설이 있는 작은 공간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 소원을 말한다. 강남역에 모이는 노숙인들은 거의 국가나 시의 시설 등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인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시설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또는 안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씻고 세탁하고 쪽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돕는 사람이 있구나 그분들이 생각하길 바라요. 또 여러분들이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라 여기고 돕는 일에 함께 힘을 합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남역 8번 출구. 월요일 저녁마다 그곳에서는 작지만 거룩한 식사가 준비된다. 그 식사를 중심으로 서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만나고 사랑하며 달라지고 있다.

후원 및 물품기부 문의 : www.강남은혜교회.org / 010-9880-6035 (변정미 목사)
노숙인 지원 전용계좌 : NH농협 044-01-116522 (사단법인 아름다운동행)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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