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다림'

약속 시간, 주사랑공동체 대표 이종락 목사(사진)가 가쁜 숨을 쉬며 도착했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열여섯 살 어린 산모의 다급한 출산을 보고 오는 길.
“어젯밤에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연락을 했어요. 하룻밤 보살핀 후 오늘 아침 함께 병원에 갔지요. 다행히 아기와 산모 모두 건강해요. 얼마나 귀합니까? 어린 데도 아기를 버리지 않고 낳았으니….”
이 목사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보였다. 손주를 본 천생 할아버지의 미소. 고통과 불안 속에서 얻은 귀한 생명이다. 다급한 상황에 놓인 여인들의 연락과 발길이 이어진 지 13년째. 베이비박스는 어린 미혼모가 아기를 낳자마자 몰래 유기하는 슬픈 현실 속에서 비롯됐다. 이 목사는 두려움 속에 버려진 아기들이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입는 현실에 몸서리쳤다. 그래서 자신의 집에 ‘베이비박스’를 만들고 “아기를 버리지 말고 이곳에 두라”고 알렸다. 기다림은 어린 생명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졌고, 그와 아내는 생면부지의 아기들을 먹이고 입히기 시작했다. 입양을 보낼 때면, 특히 미혼모가 자신의 아기를 찾아올 때면 기쁨이 차올랐다. 그렇게 주사랑공동체가 생겨났고, 현재(2021년 1월 27일 집계) 베이비박스를 거쳐 간 아기들의 수는 1,837명에 이른다. 이틀에 한 명꼴로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놓이고 있다.

소중한 생명, 기다림
강산이 변하고도 남은 세월 동안 주사랑공동체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많았다. 아기들의 수만큼 어린 엄마들 역시 공동체의 식구가 되었다. 치유 상담은 물론, 바른 임신을 위한 성교육 등 미혼모를 돌보는 일도 공동체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인연이 늘고 도울 일은 많아졌지만 살림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쯤 기초생활비 수급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유용은 없었다는 법원의 최종 판결로 일단락 됐지만 그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이전과 달라졌다. 애초에 개인이, 민간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일을 겁 없이 시도한 탓일까. 하지만 그에게는 생명을 보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내 온 나날이었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의 부침은 버려진 아기를 처음 만났던 날로 돌아가 초심을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아기를 만나는 기다림은 슬프면서도 기쁘다. 베이비박스에 누워있는 아기는 버려진 게 아니라 맡겨진 것, 포기한 게 아니라 살린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다림은 몸서리치게 아프고 슬픈 순간으로 이어지곤 했다. 작년 11월, 한 미혼모가 긴장한 탓에 갓난아기를 베이비박스 안이 아닌 밖에 두고 떠나 아기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 목사는 앞이 캄캄했고 아득했다. 하지만 다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또다시 그렇게 스러지는 생명이 나오지 않도록 서둘러 공사를 시작했다. 베이비박스의 문을 열지 않더라도 누군가 계단만 밟아도 비상벨이 울릴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구축했다. 베이비룸을 만든 것도 산모와 아기가 언제든 편히 쉴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생명 경시, 여전한 사회
이 목사가 체감하고 있는 유기 영아의 현실은 어떨까. 버려지는 아기들의 숫자가 어떤 추세인지 궁금했다.
“유기 영아의 증가추세는 점차 하락하고 있습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버려지는 아기들의 수가 하락세라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의 얼굴은 어두웠고 이내 어조는 높아졌다.
“2년 전 헌법재판소에서 낙태법이 위헌의 소지가 있으니 법을 개정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어요. 법이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닌데, 낙태시술이 크게 늘었습니다. 낙태에 대한 죄책감을 국가기관이 덜어준 셈이죠. 따라서 아기를 낳지 않고 없애는 사례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버려지는 아기의 수도 줄어들었죠.”
이 목사에 따르면 최소 3,000여 명의 생명들이 매일 병원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를 통탄했다. 유기 아동과 입양 아가들의 학대 사고가 있을 때마다 그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피력했다. 감소추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기들은 버려지고 있다.
“생명의 현장에 무지한 탓입니다. 베이비박스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을 길바닥에 버리고 싶은 부모는 없습니다. 키울 수 없으니 베이비박스에라도 맡기는 겁니다. 오늘 출산한 엄마도 열여섯 살입니다. 어린 학생이 어떻게 아기를 낳고 키울 수 있습니까? 그들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누군가 나서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베이비박스 사라지다
이종락 목사에게 기다림은 베이비박스를 없애는 어느 날을 향해 있다. 처연한 심정으로 베이비박스를 열지 않아도 되는 그날, 아기들을 품에 안고 그날을 기다려 왔다. 앉아서 기다리던 그가 지금은 길을 찾아 나섰다. 십 년을 훌쩍 넘긴 기다림은 평범한 목회자를 결기 있는 행동가로 바꿔 놓았다.
수년 전부터 입법 활동에 나섰다. 법을 만들어 주지 않으니 만들자고 직접 소리를 내야 했다. ‘모든 출산은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라는 취지의 출산 보호법을 20대 국회에 발의하는데 산파 역할을 했다. 낙태법이 실효적이 된 암담한 현실은 또다시 그의 기다림을 사정없이 흔들어 버렸다. ‘그 또한 기다림이다’ 이 목사는 지금도 ‘보호 출산 특별법’의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길을 찾고 있는 이종락 목사에게 ‘정인이’ 사건은 또 어떻게 다가왔을까? 그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공황 상태였달까요…. 큰 충격이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그의 소리는 탄식에 가까웠다. 아홉 명의 장애아를 입양한 아버지기도 한 그는 자신 탓이라고 했다. 어른으로서, 한 명의 목회자로서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되뇌었다.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에 의한 자녀 학대. 마주하기 힘든 우리의 현실이자 모습이라고 했다.

모든 기다림엔 끝이 있다
그에게 기다림은 수없이 흔들렸던 고뇌의 시간이었다. 정인이의 죽음은 이 목사에게 또다시 큰 울림을 안겼다. 4년 전 친부와 계모의 학대로 숨진 ‘원영이 사건’ 당시, 그는 우리가 침묵하면 안 된다고 소리를 높였다. 세상 모든 사람이 돈과 명예를 좇을지라도 나 혼자라도 ‘아니라’고 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다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베이비박스도 사라지는 날이 올 겁니다. ‘이제 끝이다’ 싶을 만큼 흔들리고 아픈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이 힘이 되어 이만큼 올 수 있었습니다. 눈물도, 아픔도, 분노도 결국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그날을 향해가는 과정이고 에너지일 뿐입니다.”
이 목사는 아동의 출산과 유기에서 사회 진출 및 적응까지, 이들을 위한 청사진을 날마다 그리고 있다. 언젠가 만나게 될 기다림의 끝을 지금부터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김희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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