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저자 김완 작가

“수도꼭지의 아이러니는 누군가가 씻는 데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졌지만 결코 스스로 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집이라면 그가 누구든 그곳이 어디든 가서 군말 없이 치우는 것이 제 일입니다만 정작 제가 죽었을 때 스스로 그 자리를 치울 도리가 없다는 점이 수도꼭지를 닮았습니다.” - <죽은자의 집 청소>, 248쪽

그 작가가 했던 일들
트라우마 클리닝(Trauma Cleaning). 고독사·자살·살해 현장, 쓰레기 집이나 동물 사체 등을 치우는 특수 서비스다. 즉, 어떤 이유로 오염된 현장을 복원하는 일이다. 하드웍스(Hard Works) 김완 대표(사진 우)는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수 청소업체를 운영한다. 그러나 그의 또 하나의 정체성은 ‘작가’. 최근 그의 저작 <죽은 자의 집 청소>가 출간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작가로서의 김완이 알려졌다.
특수 청소업과 작가. 어떻게 보면 어울리지 않는 두 정체성이 하나의 인격 안에 녹아 있다. 힘든 청소 서비스를 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작가를 직업으로 오랜 시간 보냈습니다. 문학적인 성과는 없는 시간이 길어지니 글쓰기가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사랑을 줘도 피드백이 없는 존재, 나만 짝사랑하는 존재’가 되었어요.”

그는 오랜 시간 작가로 살면서, 다른 일을 겸했다. “문학이나 글쓰기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임을 언급하며, 여러 가지 직업들을 전전했던 이야기를 전한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식을 배달하고, 산골에서 마을 사무를 보는 일도 했다. 지금은 특수청소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
“식당일, 마을 사무장 일은 글쓰기랑 관계가 없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삶’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수청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와 다른 일들은 주-부의 관계가 아니다. ‘삶’을 위해 힘쓰는 동등한 일들이다.

시골과 일본, 그리고 하드웍스
도시에서 일과 글쓰기를 겸하며 살다가 그는 불현듯 강원도 산골로 가게 되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영향을 받아 대안적 삶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실험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었죠. 도시생활에 지치기도 했고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문학적으로 뜻을 펴보자는 생각도 있었기에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시골 삶’을 바탕으로 저술 활동을 했지만, 그 저술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농사를 짓고, 마을 사무를 보기도 하다가 다시 훌쩍 일본으로 떠난다.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들어오는 곳에 살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곳으로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일본 도쿄였죠. 그곳에서 집필할 책들도 있었고요. 일본 플리마켓에 대한 저술, 무명 예술인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삶을 조명하는 글 등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본 이야기 역시 책으로 빚어지지 못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서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귀국해야 했던 것이다. 귀국 후 다시 ‘삶을 위해’ 이사청소업체를 시작했던 것이 지금의 하드웍스로 이어졌다.
“먼저 열었던 청소업체가 맘카페와 지역 커뮤니티에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문의들을 많이 받게 되었어요. 저는 특수한 요청들을 거절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의 하드웍스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쓰레기와 죽음을 성찰하며
죽음의 현장과 쓰레기를 마주하는 삶. 트라우마 클리닝을 서비스로 제공하지만, 정작 일을 하는 스스로의 정신건강은 어떻게 챙길 수 있을까? 그가 수도꼭지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했기에 관심과 걱정이 생겼다.
“질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내가 보고 있는 장면들에 대해 ‘선입견’이 생기면 그 시간이 괴로워집니다. 하나의 보기로 여름에는 현장에 구더기가 많이 생깁니다. 특히 목매어 숨진 사람에게서는 배설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더 심합니다. 공간 전체가 애벌레로 뒤덮이죠. 구더기에 대한 선입견, 그러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보면 기피하고 싶지만, 생명체로서의 구더기에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러면 구더기는 익충이 됩니다. 청소하는 동물, 생태계 질서를 순환시키는 긍정적인 동물이요.”

쓰레기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그는 “버릴 사람이 버리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재산”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왜 저렇게 살지?’를 질문하며 타인의 삶을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김완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제3자가 누군가의 삶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 질문은 의뢰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한다는 성찰을 얻는다.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현장을 정리하는 것은 오롯이 김 작가의 몫이다.
“만질 때 사체의 감각이 굉장히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은 저를 중심으로 하고 직원들에게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이 작가의 내면에서 숙성되고, 글이 되어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이제 죽음의 현장을 담당하는 몫은 그 혼자가 아닌, 글을 읽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공유된다.
끝으로 책의 일부를 옮긴다. ‘사랑하는 영민 씨에게’라는 소제목이 달린 글이다.

“이곳을 치우며 우연히 알게 된 당신의 이름과 출신 학교, 직장, 생년월일이 다 모슨 의미가 있는지요? 그것은 당신에 대한 어떤 진실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치우면서 한 가지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이곳에 남은 자들의 마음입니다. 당신은 사랑받던 사람입니다. ··· 그들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그들은 당신을 여전히 사랑합니다.” - <죽은자의 집 청소>, 128-9쪽

죽은 이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고결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산 사람들의 ‘사랑’이 아닐까. 이미 세상을 떠나 스스로를 닦을 수 없는 죽은 이들의 수도꼭지를 씻는 작가의 삶을 응원한다.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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