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사람들 <5>

“아공(亞公, 아펜젤러)은 원대한 계획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종로통에 아주 큰 집을 9999냥 9전 9푼에 구입하였다. 그리고 청나라 사람에게 그 집에 살면서 성경을 판매하게 했는데, 청일전쟁이 나는 바람에 청나라 사람들이 도망함으로, 선생을 그 집에 이주하게 했다.” - <탁사 최병헌 약전> 중

윗글에 등장하는 ‘선생’은 탁사(濯斯) 최병헌(崔炳憲, 1858-1927)으로, 아펜젤러 선교사가 개척한 정동제일교회의 2대 담임목사이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운영하던 배재학당에서 한문교사를 하고 있던 탁사는 청일전쟁 중(1894년) 거처를 종로로 옮겼는데, 바로 아펜젤러가 구입했던 집으로, 만 냥에서 한 푼 빠진 값으로 얻은 것은 당시 법에 의해 1만 냥 이상의 집을 매매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탁사는 본래 유교학자였다. 그러나 쇠락해가는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새 희망을 찾던 중 서양에 관한 서적들을 읽다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조원시(G.H. Jones)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에 입교하여 세례를 받았으며, 1890년대에는 아펜젤러 목사를 도와 전도자로,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목회자로서의 소양을 길렀다.

“선생이 우거하던 종로통 남변 가옥에는 신학문에 관한 서적과 교회의 제반 서적들을 구입하여 백성들로 보게 하고 간판은 ‘대동서시’라 하였다.”

‘대동서시’는 탁사가 머무르며 운영하였던 기독교 서점으로 ‘종로서적’, ‘대한성서공회’의 기원이 된다. 한편, 대동서시는 영국성서공회의 ‘성경보급소’로 활용되면서 성경을 유통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는 장소가 된다.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하는 ‘생산’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보급’이다. 이미 권서들의 활약으로 성경이 확산되었지만, 완성된 형태의 성경을 유통하는 일이 선교부에 과제로 주어졌다. 선교사들은 ‘로스역’과 ‘이수정역’ 성경을 개정하는 한편, 보급소를 마련하여 성경을 판매하였다.
특히 영국성서공회는 1993년부터 종로 향정동(지금의 인사동)에서 ‘샹두우물’이라는 성경보급소를 운영하였는데, 이 보급소를 최병헌의 대동서시로 옮겨 확장한 것이다. 영국성서공회는 그에게 월급과 수수료까지 지불하며 성경보급소를 운영했다.

당시 최병헌은 여러 일을 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서점과 성경보급소 일 뿐만 아니라, 정동제일교회의 사무를 보는 일, 배재학당에서 가르치는 일, 주간지 ‘조선회보’를 발간하고 교회에서 ‘엡윗청년회’를 조직하여 청년의 뜻과 의를 펴게 하는 일까지. 게다가, 잠시였지만 조선 농상공부 주사라는 관직까지 겸했다. 다중직의 효시라고 할 만하다.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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