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글로 쓰다 : 내 마음을 담는 노트

좋은 말을 많이 듣고, 읽고, 생각하며 산다. 귀한 깨달음이 오며 감동이 일 때, 우린 그걸 잊지 않으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순간이 지나면 대부분 놓치게 된다.
그래서 노트에 적는다. 기도하는 내용, 읽는 성경 구절, 설교의 귀한 부분을 정리하다 보면 자신의 마음이 담긴 노트가 만들어진 것을 보게 된다.

성경을 쓰는 이들
전체를 다 읽기도 쉽지 않은 그 두껍고 작은 글자의 성경을, 그대로 쓰는 이들은 어떤 마음에서 시작한 것일까. 대부분 인생의 심연에서 붙드는 성경 필사는 각자에게 놀라운 은혜와 선물을 주었다는 경험담을 말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 성경을 잘 이해하며 주님과의 사귐을 깊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기를 계속해 가다 보면 나름의 문단 나누기, 구절 풀이로 발전하게 된다. 어려운 부분을 겸허하게 내려놓음과 함께 질문을 하게 되며 필요한 책을 끌어당기게 된다. 사전도 찾아보고 현대인의 성경, 기독교 고전까지 들추게 되는 것이다.

새롭게 깨달아 가며
성경을 쓰다 보면 개인의 간구 위주로 하던 기도에서 점점 그날 쓴 성경 내용을 기반으로 한 기도를 하게 된다. 이것은 진지하게 성경을 대하는 일이 실제 일용할 양식이 되는 것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시점이 된다. 그렇다. 성경을 쓰는 일이 자신의 어떤 ‘목적’으로 되기보다 주님과 좀 더 가까이 교제하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뤄질 때 그 내용이 찬양과 회개, 감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성경을 쓰다 보면 ‘새 노래로 찬양하라’ 하신 말씀이 떠오르게 된다. 왜 새 노래로 찬양하라고 했을까. 그것은 날마다 새로운 은혜로 찬양의 주제를 얻게 됨을 뜻하며, 별 생각 없이 부르던 찬양을 새롭게 깊이 부르게 됨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것이다.

바쁜 생활에 매일 쓰고 묵상해야 하나
사랑 얘기로 가득한 ‘아가’의 말씀이 우리를 향한 내용이라는 말에 얼굴이 뜨뜻해진다. 그중 2장 14절에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하신 말씀을 보며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심을 알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경건한 삶을 가리켜 “숲이 우거진 산이나 평화로운 땅을 바라보는 것과 그 땅으로 가는 길을 직접 밟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하며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주는 특별함을 표현했다. 또 C.S.루이스는 이 시간을 갖다 보면 자기 안에 주님을 향한 비밀의 갈망이 생기며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듯이 티 낼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런 말을 했다. “주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뭔가를 하기가 쉽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하는 자가 적고 주님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도와 연결되는 성경 쓰기를 하려면
성경 말씀과 기도를 연결하는 쓰기의 좋은 방법이 있을까.
노트의 왼쪽 면에 그날의 성경을 쓰고 그것을 보며 오른쪽 면에 기도를 쓰면 꽤 유용하게 내용과 깨달음을 연결할 수 있다. 자신이 요약하거나 그대로 쓴 성경 구절 중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치거나 낱말 풀이를 해두어 그 부분을 기억해 기도문을 쓰면 좋다. C.S.루이스가 기도 방식을 수시로 바꾸는 것이 옳다고 한 것을 보면 이렇게 노트에 적는 기도를 한 방법으로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열심히 기도하다가 일상에 들어와서 남의 뒷담화를 쉽게 하는 경우나, 잡념으로 인해 기도에 집중하기 힘든 사람은 기도문을 써서 자신의 말을 확인하는 게 도움이 될거다.
기도를 말씀을 따라 해나가면 자신의 관심이 어려운 이웃으로 향하는 변화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성경 말씀을 잘 소화한 결과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의 성실함이나 너그러워짐이 느껴지며 경건의 시간이나 삶에 대한 과시욕이 일어나면 기도가 비인격적이거나 기계적으로 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C.S.루이스).
성경 쓰기는 앞서 언급했듯이 말씀의 내용을 잘 이해하며 주님과 더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이 최선이다. 힘들여 쓰기를 하다가 종종 어깨나 팔에 통증을 앓는 이들이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분량을 자신의 속도로 해나갈 때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기도로 간구할 말이 너무 많은 경우 어떻게 다 쓸 것인가.

빌 하이벨스의 ‘ACTS’를 따라
빌 하이벨스 목사는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저서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실천적인 기도지침을 제안하고 있는데, 성경 쓰기와 연결하면 더 유익하게 적용할 수 있다.
먼저 노트의 왼쪽 페이지에 쓴 성경을 보며 내 마음과 일치하는 내용으로 ‘주를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문장을 적는다(Adoration).
다음으로 그 성경 말씀에 비춰 자신을 돌아보는 ‘죄의 고백’을 하는 것이다(Confession).
그리고 감사한 일들을 발견하며(Thanks) 마지막에 간구할 것들을 적는다(Supplication).

모든 노력은 겸손을 향하여
다시 C.S.루이스의 말로 돌아간다.

“덜 나쁜 악들은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을 사탄이 이용해서 나오게 하지만, 교만은 영적인 악으로 교묘하고 가장 치명적이다.”

교만하게만 할 수 있다면 사탄은 용감한 태도나 절제, 순결도 잘 지키도록 그대로 묵인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우리가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자리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곧 자만의 마음으로 무언가 하는 것을 경계하며, 보이는 일에 후하게 하고 필요한 이들 앞에 덜 쓰는 유혹을 조심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남을 도울 때는 주느라 내가 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정도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교만과 대척점에 있는 겸손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그런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 지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쾌활하게 어울려 사는 사람이라는 것.
성화로 가는 길,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성경에 비추어 날마다 돌아보는 노력을 하는 우리다. 올해는 그 마음을 노트에 적으며 주님과 소통하는 중 변화하는 자신을 보자고 제안한다.

박스 / 삶의 작전실(war room)

전쟁 시 워룸(war room)은 핵심 요원들이 모여 작전을 협의하는 방으로 삶이 전쟁터와 같은 지금, 우리가 꼭 가져야 할 기도의 장소다. <war room>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으나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며 지난해 재개봉된 작품이다. 여기서 워룸은 한마디로 나만의 기도하는 공간을 말한다. 많은 시간을 집안에서 지내는 요즘 나름의 시간표를 가져야 하는데 그중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찾아 골방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영화 가운데 클라라가 남편으로 인해 힘든 엘리자베스에게 워룸을 소개하며 말한다.
“주님은, 아주 힘든 일은 우리 몫이 아니고 주님이 하실 거라 하셨지요. 우린 그 뜻을 구하며 따라 살면 되는 것이고요.”
여기에는 남편이나 자녀의 문제가 다 들어있다고 하며 대적은 그들이 아니라 뒤에서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가려 하는 사탄이라 말한다. 자신의 신앙을 미지근한 상태로 표현했던 엘리자베스가 조금씩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생동감 있는 신앙의 힘을 확인하게 된다.
집안 한 곳에 자신이 좋아하는 자리, 워룸이 있는지?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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