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극장 찾기 힘든 이때, 넷플릭스·왓챠·유튜브·네이버 등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100년의 삶을 되돌아보니
2013년도 코미디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알란은 “고민해봤자 도움 안 돼.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거야”라는 엄마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생각은 접어둔 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며 평생을 살아온 남자입니다. 그런 그가 100세 생일날 양로원을 탈출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연히 갱단의 돈 가방을 맡게 되면서 일이 묘하게 꼬이게 됩니다. 영화는 갱단과 경찰로부터 추적당하는 그의 여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의 지난 100년간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알란의 과거엔, 스페인 내전 참전과 독재자 프랑코와의 조우,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 참여와 트루먼과의 인연, 스탈린과의 악연과 소련 노동수용소 복역, 68혁명과 미소 냉전 기간 중의 이중스파이 생활, 그리고 레이건과의 만남과 베를린 장벽 붕괴 등, 20세기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우연’,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알란을 중심으로 한 ‘인맥’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특이합니다.

영웅은 때가 만들어내는 것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개인의 창조성과 역할을 신봉하는 영웅주의 역사학을 주창했습니다. 반면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E. H. 카는 개인의 행동이 의도치 않게 모순된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하며 특정 개인 중심의 영웅사학을 비판했죠.
과거에는 개인 능력에 따라 스스로 노력해서 영웅이 되거나 혹은 스타가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영웅과 스타가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주목합니다. 즉, 개인이 사회의 산물이라는 시각인 거죠. 할리우드 스타에 대해서 연구한 리차드 다이어는 이데올로기의 위기와 욕망이 반영되어 대중문화 스타가 선택된다고 주장합니다.

한 예로, 70년대에 흑인·여성의 파워가 놀랍게 커져 백인 남성 사회가 위축되자, 80년대 미국 사회는 과거 강력했던 백인 남성을 갈망합니다. 그 결과 정치판에선 마초적인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했고, 대중문화계에선 아놀드 슈워제네거·실베스터 스탤론 등과 같은 근육질 스타가 떠오르게 되었죠. 그런 인물들이 각광받은 건, 그저 때가 잘 맞아떨어진 덕인 거라는 거죠.

정말 내가 잘해서 된 걸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과거에 유행했던 개인 중심의 영웅주의와 능력주의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내가 노력해서 이렇게 성공했다”는 성공담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알란이 그런 것처럼, 그들 또한 그저 ‘운’이 좋아서, 그리고 누군가를 잘 만나서 그렇게 된 거 아닐까요? 서울 강남 학원가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명문대생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모 잘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즉 ‘운빨’에 의해 정해지는 환경이 개인을 만든다는 거죠.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21세기 현대사회에도 ‘운명론’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컴퓨터에 똑같은 데이터를 넣어도 다른 결과를 내놓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인간사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선거철·입시철마다 그렇게 사주점집이 문전성시를 이루나 봅니다.

끊임없이 행동했다
영화 속 알란의 삶은 그가 특별히 뭘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냥 그렇게 된 거죠. 우연히 그가 ‘거기에’ 있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이 영화를 정리하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허망함만이 남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알란은 100세가 되어서라도 ‘행동’을 했다는 겁니다.
“너무 생각만 하지 말고 먼저 저질러야 돼요.”
가만히 있는 자에게 복이 굴러들어오지 않습니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최소한 복권을 사기라도 해야지요. 영화 속 알란은 그 나이에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고, 실천합니다.
예수의 열 처녀 비유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준비했기에, 깨어있었기에 잔치에 참예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 운명이 바뀔지는 모르나, 가만히 있는 자에겐 기회마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항상 겸손한 자세로
코로나로 인해 암울했던 2020년이 역사의 저편으로 넘어갔습니다. 2021년 새해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린 모릅니다. 과거엔 그저 자연의 시간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래서 어두워지면 자야만 했죠. 하지만 우린 그 시간을, 그리고 이 세계를 주체적으로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능력과 마음대로 모든 걸 다 이뤄낼 수 있는 건 아니었죠. 지난 한 해 우린 그걸 몸소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역사 앞에 교만은 금물이죠. 그렇다고 모든 걸 운명에 맡기고 잠자코 있어야 할까요? 새로운 사회가 열리고 있으니, 이에 맞춰 변화하며 능동적으로 준비하면서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소망하며 기대는 하지만, 항상 겸손한 자세로 말이죠.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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