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생각하는 정원>

김승범 기자가 직접 걸으며 오감으로 느낀 특별한 공간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집 정리 통해 생긴 ‘공간’
간만에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쓰지 않는 것부터 분류해서 버렸다. 버리는 일이 썩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왠지 언젠가는 쓸 것 같고, 의미도 있어 보이고, 아깝기에 핑계를 대는 자신과 한참을 다투며 제법 많은 물건들과 이별해야 했다. 그런데 욕심만큼은 아니지만 정리된 집을 바라보니 마음이 봄꽃 피듯 행복해졌다. 가구 배치를 바꾸니 오디오를 틀고 차를 마시며 노트북을 볼 수 있는 새로운 공간도 생겼다. 가꾼다는 것은 버리고 비우는 정리의 시간과 효율적이고 미적인 갈무리의 과정이 아닐까.

나무를 심고, 분재를 가꾸고
제주에는 50년 넘도록 나무와 분재를 가꾸는 분이 있다. ‘생각하는 정원’의 성범영 원장이다. 1970년대 초 서울서 잘 나가던 와이셔츠 공장사업을 뒤로 하고, 변변한 도로도 없던 제주의 가장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각고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1992년 분재 예술원으로 개장하여 현재 ‘생각하는 정원’으로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코스가 됐다. 성범영 원장의 개척정신과 결실은 해외에서도 귀감이 될 만큼 초인적인 삶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분재를 기르는 과정에서 인격 수양에 큰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한다. 나무를 심고 분재를 가꾸는 오랜 시간, 수없는 실패와 좌절을 통한 극기와 성공의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한 듯싶다.

제주와 닮은 정원
정원의 모습은 제주와 닮았다. 위에서 보면 여러 개의 오름 사이로 정원길이 조성되어 있다. 길 따라 다양한 수목과 분재들이 자태를 뽐내며, 인공 폭포와 호수는 인공적이기보다는 자연에서 퍼 옮겨놓은 듯 자연스럽다. 호수에는 깜짝 놀랄 만큼 색색의 큰 잉어들이 가득하다.
겨울이라 색들이 바래있는 풍경이지만 정원길의 아기자기함과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분재의 수형에 감탄할 뿐이다. 생각하는 정원이 되기 위해서는 분재마다의 설명을 자세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무의 성격, 분재의 원리, 의미 등을 이해하면서 보는 분재는 결코 가로수 지나가듯 볼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성범영 원장의 개척과정을 전시해놓은 공간에서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분재를 보는 것 보다 먼저가 아닐까 싶다. 간혹 분재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기도 하다. 자연의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나무를 괴롭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에 대해 성범영 원장은 ‘분재에 감아 놓은 철사, 알루미늄 선들은 식물의 성장을 통해 수형을 교정하는데 잠시 활용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나무에 대한 극진한 사랑은 인위적이지만 자연의 원리대로 키우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예술로 승화된다.
정원의 또 다른 놀라운 부분은 돌담이다. 태풍으로부터 나무와 분재들을 보호하기 위해 겹담(이중으로 돌을 쌓는 담)으로 높이 쌓아올렸다. 성 원장이 여러 번 병원 신세를 질 만큼 고단한 작업이었다고 한다. 화산석을 일일이 손 망치로 평평하게 다듬어 쌓아올린 돌담을 보면 그 노고에 대한 묵직한 감사함이 올라온다. 생각하는 정원은 모양보다 만든 이의 정신을 만날 때 더 위대해 보이고, 감격하게 된다.

전에 없이 집에서 보내는 많은 시간들에 점점 힘들어들 한다. 준비되지 않은 시간의 여백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또한 정원을 가꾸듯 내 일상을 서두르지 않고 정성스레 가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지.
집콕이라도 가꾸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맛봐야겠다.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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