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콤플렉스 있으신가요?”라고 물으면, “저는 작은 눈이 콤플렉스에요”, “저는 키가 너무 작은 게 콤플렉스에요” 이런 대답을 듣게 되곤 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열등감’과 동일시하는 듯합니다. 유난히 돈 얘기에 예민한 사람에게는 돈 콤플렉스가 있다 하고, 평소 잘하다가 시험만 보면 긴장을 해 시험을 망치는 사람에게는 시험 콤플렉스가 있다 하지요. 자기 소망을 억압하고 희생하며, 타인에게 착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이에게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그 곳’만 건드리면 펑 터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상처가 유독 빽빽하게 모여 있는 곳, 우리의 아픈 기억이 뭉친 근육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는 곳, 바로 그 곳이 우리의 콤플렉스가 자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유독 자신이 취약한 주제나 단어만 나오면 극도로 긴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단어를 듣기만 해도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거나, 정서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때로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내가 그 말만은 꺼내지 말라고 했지! 그 얘기만은 건드리지 말라 했잖아!”라며, 스스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모진 말을 내뱉으면서 말이지요.

심리학 용어이지만, 일상 속에서 누구나 자주 쓰는 단어인 콤플렉스는 단순히 내가 느끼는 약점 그 이상의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안에 유난히 복잡하게 꼬여 있는 부분, 유독 정신적 에너지가 모여 있는 곳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넌 왜 그 이야기만 나오면 그렇게 예민하게 나오는 거니?” 이런 반응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우리의 콤플렉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망, 집착, 증오, 분노, 자긍심, 질투심, 슬픔, 후회 등의 감정적 에너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 콤플렉스가 머무는 곳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들과 행동이 바로 이 콤플렉스가 빚어내는 그림자입니다.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콤플렉스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분석심리의 창시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에게 콤플렉스는 단순히 열등감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반응을 빚어내는 모든 것이 콤플렉스를 일으킬 수 있고, 역으로 콤플렉스로 인해 기쁨, 분노, 공포 등 모든 강렬한 감정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지요. 콤플렉스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마음속 ‘응어리’로 에너지와 감정의 강도를 지닌 복합체이기 때문에, 자극되면 강한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토록 통제가 어려운 콤플렉스를 우리는 숨기고 억눌러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응어리를 꽉 눌러두기만 하면 결국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것처럼, 콤플렉스는 눌러둘수록 엉뚱한 지점에서 감정으로 터진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콤플렉스를 다르게 마주봐야 할 것입니다. 칼 융은 ‘콤플렉스는 단지 심리적 약점이 아니라, 온갖 탐험의 가능성으로 가득 찬 영역이며, 우리의 손이 아직 닿지 않은 무의식의 가능성이 숨 쉬는 곳’이라 말합니다. 그림자만 드리우는 것이 아니라, 찬란한 빛이 함께 담긴 곳이라는 뜻이지요.

내가 타고난 취약점이라 여기고, 약점이라 여기는 것은 결코 나의 콤플렉스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주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위협하는 것, 나다움을 앗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콤플렉스입니다. 그 콤플렉스가 품고 있는 감정을 편안하게 바라보고 인정하고, 원하는 소망을 채워준다면 콤플렉스는 오히려 우리를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가능성으로 만들어줄 단서가 될 것입니다. 한 해의 시작에 서서, 갇혀있던 나의 콤플렉스에게 세상을 맛보게 할 자유를 선물해보면 어떨까요?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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