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쓰는 모니터는 연식이 오래되었지만 여러 가지 색상 설정을 구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촬영한 사진을 모니터로 조정한 후 인쇄물의 색을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적합한 기준점을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눈이 색약이라 내가 정한 기준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장 초기 설정을 눌렀습니다. 그러면 밝기나 명암, 색온도 같은 값이 제조사가 맞춰놓은 초기 설정 상태로 복원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기들이나 프로그램, 핸드폰이나 운영체제, 어플 등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흔히 ‘디폴트 값’이라 부르는, 제조사가 맞춰 놓은 기본값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어려움을 경험하며 모두가 흔들려서 좀처럼 방향을 찾지 못하는 시간을 살며 생각했습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내가 찾아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
바로 기본 설정 값, 디폴트 밸류(default value).

‘나의 초기 설정 값은 어떻게 세팅되어 있는가?’

내가 맞추려 애쓰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팅 값이 아니라 내가 지어질 때부터 변함없이 만들어진 기본 설정 값.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방향이 어긋나면 다시 목표점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내용을 전제한 말입니다. 방향을 찾기 위해 우리는 먼저 초기 설정 값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결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전쟁 앞에서 군마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내 마음이기도 합니다.’

초기 설정값이 있다는 말은 나를 향한 뜻과 인생의 약속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문제를 풀어낼 수 없는 한계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누구십니까? “내가 그니라.” (요한복음 18:6)
오답을 정답이라 믿지 않고 정답을 정답이라 믿어야 하며, 시행착오는 우리 인생의 자양분임을, 남의 인생을 곁눈질하지 않고 그저 나의 인생을 걸어가는 것. 이렇게 끊임없이 나의 초기 설정 값을 확인하는 것.
나의 달려갈 길과 그대가 약속한 시간 속에서….

이요셉
색약의 눈을 가진 다큐 사진작가. 바람은 바람대로, 어둠은 어둠대로, 그늘은 그늘대로 진정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글과 사진과 그림으로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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