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숫자를 이해한다는 것

의미 있는 숫자 vs 감정 없는 숫자

12월~ 자신의 생일이나 명절보다 크리스마스를 더 좋아한 어린 시절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금이 바로 그 기분을 기억하는 시즌일 거다. 이런 이들은 숫자가 주는 벅참과 설렘을 잘 알아 12라는 숫자만 보아도 흐뭇한 미소를 지을지 모른다. 숫자 자체는 감정이나 가치를 지니지 않지만, 이렇게 내게로 올 때는 특별한 의미로 말을 한다.

숫자를 멀리하려는 마음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보통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숫자다.”
숫자를 애써 무시하려는 사람들이 인용하는 작가 마크 트웨인의 이 말은, 통계를 낼 때 대상 선정이나 구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대가 발전해가며 경제 뿐만 아니라 선거나 스포츠, 환경 등 다양한 방면에 통계가 사용되고 있다.
문과형이라 숫자에 약하다는 사람, 숫자 얘기만 들으면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도 있으나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그날의 최고 최저 온도를 살피며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한다. 또 코로나 확진자 상황을 보고 코스피 지수나 환율도 슬쩍 들여다본다. 몸무게를 재고 그날의 일정을 시간별로 확인하는 등, 숫자에 영향 받지 않는 삶을 살 수 없다. 그래서 현대를 숫자로 말하는 세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숫자의 유익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는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의 말대로 이 세상은 수치를 통해 유익을 주는 분야가 많다. 불과 수십 년 전 시작된 혈압, 당뇨, 콜레스테롤 검사가 수치 표본으로 만들어지며 예방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비롯해 숫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모두, 많은, 계속’ 같은 애매한 어림 단어를 실제에 가깝게 접근시킨다. 그리하여 수치로 나타난 것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을 방지해 ‘약자의 무기’라고도 불리게 되었다(사이토 고타즈 ‘숫자가 싫어서’).
고대 인도에서 창안되었으나 이슬람 수학에 도입된 뒤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져 ‘아라비아 숫자’라 불리는 이 기호는, 쉽고 유용함을 지녀 만국 공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숫자 표현으로 경제 감각은 높아지고 뜻을 전달 소통하는 일은 훨씬 수월해졌다.

숫자 뒤를 읽는 눈
요즘은 제품이나 사업에도 숫자를 넣어 신뢰감을 주고 각인의 효과까지 얻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숫자 뒤에 숨은 ‘사람’과 ‘진실’을 보아야 한다.
감정이나 정서가 없는 숫자를 보며 믿을만한 수치인지, 정확한지 또 가치가 있는지를 짚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숫자의 이면을 읽는 힘’을 나카오 류이치로는 삶에 꼭 필요한 ‘기술’이라 하며 매우 유용하고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강점이라고 강조한다(‘일 잘하는 사람은 숫자에 강하다’에서).
그러기 위해서는 숫자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고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필요한데, 많은 숫자를 바로 이해하고 분석하려면 큰 단위 숫자를 암기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세계인구는 78억 명이고, 10년 후엔 88억 명 정도가 될 거라고 기억하라는 거다.
또 숫자로 말하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계산하는 힘과 전달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어림셈을 사용해 간단한 암산을 습관화하고, 또 정도를 표현할 때 1에서 10까지 중 척도를 말하는 것이 좋은 접근방법이 된다.
요즘 일본에서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할 때, 위험하다는 말로 경고하기보다 오염수 안에 있는 62종의 원소 중 걸러내지 못하는 원소가 몇 개며, 그 남는 원소들의 영향이 어느 기간 동안 어떻게 나타나는지 ‘숫자’로 말해야 의사 전달이 강력해진다는 것이다(서균렬 교수 칼럼 중에서).

숫자에 대한 재능이 있으면
하워드 가드너 박사는 우리의 지능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언어, 논리, 공간(그림), 음악, 신체, 자연 탐구, 인간관계, 자기 성찰 분야. 그러면 이 가운데 수에 대한 재능은 어디에 속할까. 그것은 놀랍게도 논리 영역에 들어간다. 정확히 ‘논리 수리 재능’이라 할 수 있는 이 분야가 발달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생활 양상이 나타날까.
이들은 추론 능력이 뛰어나 개념이나 주제의 논리적 연관성 찾기를 좋아하며, 새로운 주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고력에 뿌리를 둔 생각하는 일을 즐거워한다. 이 분야는 학교 성적과 지식의 많은 부분과 연관되므로 누구나 개발되는 것이 유익하다.
그러나 이들은 알려는 욕구가 강해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는 면과 함께, 알지 못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아 의기소침해짐이 나타난다는 것. 특히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민감하여 불쑥 화내는 일이나 잦은 전화 연락에 당황해한다(캐시 코크 박사).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여길 때 쉽게 실망하며 짜증을 내는 모습과도 연결된다.
한편 이들은 자신의 이해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통해 안전 욕구를 채우므로 숙고할 가치가 없는 것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분석에도 능숙해 판단을 잘하므로 비논리적이거나 무책임한 사람을 받아들이기가 퍽 어렵다. 또 호기심이 많아 젊은 날에는 도덕적으로 절제가 필요하다. 가벼운 농담이나 반복되는 말에 따분해하며 지적·영적으로 교만하기 쉽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치에 닿지 않는 상황을 극복하는 노력을 해야 하며, 논리에 맞지 않을 때 취할 자세나 힘든 시간에 제기되는 의문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익혀나가는 게 과제가 된다.

숫자를 넘어
숫자는 사람의 욕망과 닮았다. 끝없는 숫자의 세계는 순위를 매기며 더 많이 쌓으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더욱이 숫자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 더 가까이 있게 된다. 이때 멈춰 생각해야 할 것은 숫자를 넘어서려는 고결함이다. 그 이상을 바라보려는 마음이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양보다 ‘의미’를 따르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몇 명, 얼마’를 넘어서 ‘어떻게, 무엇을’에 관해 더 많이 말하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숫자 가운데 자족할 수준을 정해보며 기쁘고 좋은 날, 어떻게 해야 함께 행복할지를 생각해보는 거다.
숫자상으로는 맞지 않는 계산, 덧셈과 뺄셈이 맞지 않는 부분이 은혜의 영역이라는 걸 신앙인들은 이미 경험해 알고 있다. 단지 그 기억이 흐려졌거나 욕망에 눌려 보이는 숫자를 흠모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노래를 조금 바꿔본다.

사랑은 참으로 나누는 것, 내놓는 것,
이상하다. 한 주머니 움켜쥐면 사라지고
함께 하면 풍성해져 주변이 따스해~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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