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숫자를 이해한다는 것

어머니와 나의 숫자
‘63’이란 숫자는 어머니의 연세이다. 푸근한 모습의 어머니는 늘 갈색 염색과 짧은 파마머리를 하고 계시고, 귤을 까 드시면서 소파에 누워 TV를 보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자라왔던 그 고향 집에서 한두 번 통화음이 가기도 전에 받으시며, 익숙한 목소리로 나를 반기신다.
얼마 전 고향 집에 내려가 오래된 앨범을 꺼내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보였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환한 미소, 씩씩한 모습으로 힘자랑을 하고 계신 아버지의 젊은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사진 속 한 여성의 모습. 하얀 피부에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한 손을 턱에 괸 채 잔디에 옆으로 누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긴 생머리에 작고 가녀린 모습, 앨범을 넘기니 그녀의 결혼식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23세의 어머니였다.
‘39’란 숫자는 지금 내 나이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나왔던 시간을 다시 회상해본다. 가난, 슬픔, 상실의 사건이 떠오른다. 성취, 기쁨, 환희의 시기도 기억나 환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내 옆에 계셨다. 나와 같이 슬퍼하고 같이 즐거워하셨다. 아리따운 아가씨는 푸근한 63세의 어머니가 되셨지만 삶의 풍파를 견디며 자녀를 낳았고 최선을 다해 키웠으며, 그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신다.

시간의 계절을 이해하라
시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새싹이 피는 봄과 열정이 가득한 여름, 무르익고 조금은 쓸쓸한 가을, 그리고 차디찬 겨울처럼 시간은 우리의 외모와 역할을 나이의 숫자만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삶에는 지평선이 떠오르는 아침이 있다는 것과 모든 것이 어두워지고 희미해지는 밤이 있음도 가르쳐 준다.
에릭슨이라는 심리학자는 삶이 크게 8가지의 발달단계를 갖는다고 이야기했다. 출생 후 18개월까지는 신뢰, 18개월에서 3세까지는 자율성, 그리고 3세에서 6세는 주도성, 6세에서 12세는 근면성, 그리고 사춘기 시기에는 자아 정체감이 중요하다고 했다.
성인이 되면 어떨까? 20대에서 30대까지는 친밀감, 중년기에는 생산성, 그리고 노년기엔 자아 통합이 중요한 과제를 갖는다고 한다.
특히 노년기엔 자아를 통합할 수 있는 시기인 동시에 이것이 좌절될 때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고 한다. 많은 갱년기 여성들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약 3분의 1은 우울증을 갖는다고 하는데, 현대사회에서 이런 증세가 가속화되는 것은 좌절감과 무기력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외로워지고 고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시간을 놓치지 말기를
안타깝게도 노년 부모가 그 ‘계절’을 지나고 있을 때 자녀들은 또 각자의 계절을 지나게 된다. 아이일 때 부모를 찾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에릭슨이 말한 대로 청년기가 되면 그 친밀감은 부모가 아닌 다른 이들로 넘어간다. 그리고 중년기엔 열심히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생산하기 위해 과거엔 중요했던 이들을 점점 잊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주변의 소중한 이와 나눌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진 속 한 여성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가끔 전화할 때 받는 어머니의 반가운 목소리는 항상 있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어느 시기에 있든지 간에 그것은 단 한 번만 있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그 시간을 놓치지 않기를,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각자의 계절을 치열하게 보내고 있는 이들의 계절을 이해해주며 손을 내밀고 온기를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다시 오지 않기에 일상은 소중한 것이다. 온기는 차디찬 외로움과 고립감을 녹인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나눈 시간과 경험을 가지며 당신이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는 속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헌주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객원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 여러 심리/정서 관련 과목을 맡고 있으며, 다수의 기업과 교회에서 상담심리에 관련된 스트레스 관리, 감정 코칭, 관계 증진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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