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 평화누리공원>

김승범 기자가 직접 걸으며 오감으로 느낀 특별한 공간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사람간의 거리두기가 점차 익숙해져가는 요즘이다. 아이들은 놀면서도 마스크를 쓰고 서로 신체접촉을 안하려고 하는 ‘코로나 세대’들이다. 하지만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안다는 말로 친한 사이를 표현했던 어른 세대는 지금의 거리가 무척이나 멀고 정떨어지는 시간일 것이다.

아버지는 6․25 때 원산서 내려오신 실향민이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어릴 적 얘기를 듣고 자란 나로서는 이북 땅은 언젠가 가봐야 할 것 같은 판타지가 있었다. 그런 영향인지 가끔씩 홀가분하게 찾는 곳이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이다. 주말이면 주차를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요즘은 많이 한산해졌지만.
더욱이 평일은 공원이 더욱 넓게 보이도록 여백이 생겨 마음을 편하게 한다. 민통선을 앞에 두고 임진각에서 보이지 않는 고향을 바라보며 그리는 곳.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거리두기를 표시한 길고 긴 철책들. 그러한 아픔과 그리움의 현장에는 평화를 기리는 평화누리공원과 수풀누리공원이 있다.
평화누리공원은 호수와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 공원으로 비현실감을 느낄 만한 조형물들이 곳곳에 있다. 겨울의 갈색잔디에 길들이 선을 그어 놓은 듯, 간간이 보이는 사람들의 거리가 코로나에 어울리는 그림이다. 초겨울의 앙상한 나무들과 초록이 벗겨진 잔디와 풀들의 모노톤은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씩 털어내고 싶어진다. 언덕을 넘으면 카라반과 캠핑장이 있다. 넓은 잔디운동장은 가족과 연인들의 좋은 공간이다. 하루라도 가족과 캠핑하며 바비큐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바로 옆에 최근 개장한 수풀누리공원은 메타쉐콰이어길, 창포섬, DMZ정원, 잔디광장, 잔디동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변길이 데크로 편하게 조성되어있다. 평화누리공원에 비해 더 외지로 나온 기분이 든다. 순천에 있는 갈대숲도 좋지만 서울서 한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이곳의 갈대숲도 크게 모자라지 않다. 쌀쌀한 겨울, 시리게 푸른 하늘밑, 갈대와 바람의 초연한 몸짓에 나 또한 무게감 없이 걷는다.
철새들의 소리가 멀리서부터 커진다. 수천 마리의 철새들이 긴 철책을 넘어 엄청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로 차양막을 치듯 지나간다. 놀라운 경험이다. 수많은 무리들이 엉킴 하나 없이 다투지 않고 간격을 두며 방향을 옮기는 모습은 마치 하나님의 지휘 아래 춤을 추는 듯하다. 나는 신기하게 여길지언정 새들에게는 진정 자연스러움이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 하면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살지 못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움 아닌가.

남과 북을 갈라놓은 철책처럼 사람들은 이분법으로 수많은 ‘철책’을 치고 산다. 너와 나, 내 편 네 편, 내 것 네 것, 자신에게도 규정을 짓고 자유로울 수 없는 철책을 친다. 철책을 치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분열과 분쟁이 생긴다. 철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들의 자유로움은 부딪힐 철책이 없기 때문이다.
흔히 ‘좋은 사이’라는 말에는 사이가 관건이다. 사이라는 거리가 어느 정도일 때가 가장 안전하고 좋은 사이일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의 지혜. 모든 면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상태가 가장 평화롭다.
코로나로 어색한 새로운 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불신의 거리가 아니라 배려와 안전의 거리다. 한적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나감이 좋다. 이전에는 많은 사람 만나는 일로 즐거웠다면 요즘은 나 자신을 대면하는 시간이 자라는 화초를 보듯 즐겁다.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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