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는 아득한 시간과 거리를 두고 이어지는 남자와 여자의 소통으로 채워져 있다. 영화 속 2047년, 인간의 삶의 경계가 태양계를 넘어서 우주의 일상과 지구의 일상이 뒤섞인다. 중학교 시절의 추억만을 가지고 한 사람은 우주에서, 한 사람은 지구에서 주고받는 그들의 이야기. 우주와 지구라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괴리감 속에서 그들이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다.
“잘 지내니? 나는 외롭지만, 잘 지내고 있어.” 그 사소한 말을 담은 메시지는 전송되기까지 무려 8년이 걸린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변해갈까. 영화 속 남자의 대사처럼 ‘빛의 속도로 8년이나 되는 거리’란, ‘영원’이란 것과 차이가 없다. 하고 싶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사이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8년이 지나도록 그녀를 생각하며 혼자서라도 꿋꿋하게 어른이 되어가는 남자, 우주 한복판에서 죽음과 맞서 싸워나가면서도 소년과의 추억에 의지하며 견뎌내는 여자. 그들이 주고받은 소통은 무엇이었을까.

햇살이 화사한 날 작은 카페를 찾았다. 곧 옆자리에 한 남자와 여자가 자리 잡았다. 그런데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연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비난과 지적이 쏟아졌다.
“나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해? 그리고 우리 부모님께 좀 잘해야 하지 않아? 어제도 그래!”
남자는 고개를 젓다가, 입술을 삐죽이다가, 창밖을 보다가, 내내 딴청이다. 듣지 않는 건 아니지만, 결코 수긍하지도 않는 행동에 여자의 목소리는 높아져만 갔다. 사람들 시선이 모이기 시작하던 그 때, 남자가 한마디를 던졌다.
“이 카페, 좀 답답하지 않아? 나가자”
대화는 그렇게 끝나고 이내 각자 나가버렸다. 여자는 자신의 말이 전해지지 않아, 화가 났을지 모른다. 남자는 자기 상황을 헤아려주지 않는 비난이 답답했는지 모른다. 그들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카페를 나선 뒤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내가 본 시간 속에 소통은 없었다. 말과 행동에 가려진 진심을 서로 알아차릴 수 있다면, 서로의 의견이 부딪히고 다투더라도 나란히 걸을 길을 찾을 텐데….

<별의 목소리>에서 소년과 소녀는 빛으로도 8년이 걸리는 거리 속에서, 쉬지 않고 진심을 주고받는다. 만날 수 없는 아득한 공간을 사이에 두고도 멈추지 않는다. 서로의 메시지가 도착한 순간이 중요하지 않은 건, 그들의 진심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수억 광년이라는 까마득한 밤하늘을 지나 우리의 눈에 와 닿는 별빛의 순간처럼 그들은 같은 순간 속에 늘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서로의 언어는 서로의 주장에 묻혀버리고, 닫힌 마음의 벽에 부딪힌 말과 마음이 흩어져 버리진 않는가.

소통을 의미하는 단어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라틴어의 ‘나누다’를 의미하는 ‘communicare’에서 유래했다. 이야기를 나누어도 일방적인 전달만 있을 뿐 나누어 가진 것이 없다면 소통이라 말하기 어렵다. 진정한 소통이 있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눈 이야기가 심겨진다. 그 이야기는 창조이다. 막 피어난 꽃처럼 새롭고,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진심’이 있다. 지구의 한 공간에서 그러한 소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삶의 가장 커다란 의미일 것이다.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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