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오늘을 어떻게 디자인할까

호모 루덴스로 살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본질은 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역사철학자 요한 하위징아(J. Huizinga, 1872-1945)는 노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 ‘호모 루덴스’(homo ludens) 개념을 창출했다. 그는 놀이 속 풍부한 상상의 세계에서 ‘창조적 활동’이 일어나고, 이것이 곧 인류의 학문, 예술 등의 발전에 기여하기에 놀이하는 인간상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영상 플랫폼 유튜브를 놀이터삼아 신나게 놀고 있는 새내기 유튜버 김태훈 씨(사진)를 만났다. 영어 원서 읽어주는 남자, 채널명 <영어대장 티쳐킴>. 유튜버가 된지 불과 3개월 정도인데 구독자 1800명이 넘는 성장세를 보여주는 이 계통의 속칭 ‘인싸’(‘인사이더’라는 뜻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다.
그의 채널에는 다양한 영어 관련 콘텐츠들이 있다. ‘영어로 성경 읽기’, ‘원서 강독을 위한 구문 강의’, ‘기독교 신학 원서 강독’, ‘영·미 명문장 독해’. 이러한 영상들이 일주일에 3~5개씩 꾸준히 업로드 된다. 영상 내용을 보니 그의 본업이 궁금해진다. 그는 다름 아닌 목사다. 그런 그가 왜 유튜버가 되었을까.
“오래 전부터 목회자 영어 독해 공부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로 비대면 국면에 접어들면서 모임을 할 수 없게 되었죠. 주변 사람들이 ‘영상강의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주면 안 되냐’고 요청해서 영상제작과 업로드를 위해 태블릿을 샀습니다. 그리고 유튜버가 되었네요(웃음).”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은 영어 유튜버라는 새 놀이에 날개를 달았다. 영상을 몇 개 업로드 하자마자 목회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바쁜 교회 일 때문에 ‘영포자’(영어 포기자)로 살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가뭄 속 단비 같은 채널이었기 때문. 영어로 성경을 읽고, 신학 원서 강독을 한다니! 영어와 독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무엇보다 ‘목사의 마음은 목사가 안다’했던가. 목회자 또는 기독교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다루기 때문에 그의 영상 강의는 차별성이 있다.
목회를 하면서 영상기획, 제작, 편집, 업로드까지. 이것들을 다 할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인지 묻자, “취미가 따로 없어요. 영어 원서 강독밖에···”라고 수줍게 답한다. 그에게 유튜브는 ‘일’이 아니다. 노는 거다. 여기서 호모 루덴스를 만난다.

놀이 그 너머를 꿈꾸며
티쳐킴은 구독자가 1000명 정도 되었을 때부터 유튜브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정 요건을 갖추면 영상을 통해 2차적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수익’이 끼어들면 ‘일’이 될 터. 이미 그의 취미생활은 예상하지 못한 여러 일들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한 인터넷강의 기업에서 강의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신학영어와 관련된 강의 촬영이 잡혔죠.”
재미로 시작한 유튜브인데 일이 커져간다.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교재도 집필해야 한다. 게다가 작년에는 <마가가 전하는 예수 이야기>라는 책을 번역하며 번역가로서도 첫 발을 뗐다. 일이 너무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영어라는 그의 ‘취미’로 소급된다.

어떤 의미에서 코로나19는 인간 김태훈의 삶을 크게 바꾸었다. 대면 공부 모임을 할 수 없게 된 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놀이터를 찾아 나선 ‘티쳐킴’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하위징아를 소환한다. 그는 “놀이의 반대편에 진지함이 있다”고 했다. 놀이 없이 일만 남은 진지한 삶은 재미없다.
코로나19로 포기한 진지한 삶들에도 놀이가 회복되기를 바라본다.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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