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

독신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캐럴린 맥컬리는 50대를 맞으며 이런 말을 했다.
“혼자 사는 생활에 불만을 품고 40대를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긴 30대도 쉽지 않았다. 이제 세월 속 그런 감정들에 지배받지 않아야 함을 알아 오늘을 선물로 여기며 주변을 돌아본다.”
어쩌면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느라 오늘을 떠나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짝을 만나게 되면’,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직장만 안정되면’, ‘코로나가 지나가면’~ 이런 것들은 중요한 주제이지만 거기 매이는 것은 앞서 캐럴린이 지난날을 아쉽게 여긴 것과 같이 우리도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살아야 할 몫을 다음으로 미루게 되는 유형이 따로 있을까.

예민성과 미루는 성향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는 저서를 통해 ‘신경성 수치’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사람을 설명한다. 신경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걱정 없이 게으름을 피우지만,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크고 작은 일에 불안해하며 긴장해 그 염려 때문에 오늘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할 일을 하지 못해 마음이 불편한 가운데 좋은 잠을 자기 어렵고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로 지내게 된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외향성이 높은 사람을 꼽는데 이들은 일 처리 순서를 밖의 것 우선으로 하고, 밀린 일 중 급한 것을 하다 보니 늘 마지막(dead line)이 되어야 겨우 일이 이뤄지는 것.
이중 어떤 유형이든 몸에 밴 패턴은 뇌에 형성되어 곧 자신의 생활 스타일이 된다. 미루는 습관이 안타까운 것은 마음에 부담이 밀려들게 되면 원인을 남에게 돌리며 감정적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정도를 넘는 예민함이 예술적 창작 활동과 남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일에는 매우 강점으로 작용하지만 일상을 꾸려가는 삶에는 스스로 고단하게 할 때가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부분을 다스려 ‘오늘’을 순하게 이어갈까.

5대 1의 법칙 받아들이기
종종 우리는 지속되는 ‘어떤 과제’에 마음을 빼앗긴다. 생각하기에 따라 사소한 일일 수도 있고 붙들고 있다고 더 나을 것이 없는데, 상황이나 말을 곱씹으며 수렁을 만든다. 마치 ‘완벽한 작품’으로 복원하려는 듯이 말이다.
이에 대해 존 가트만 박사는 5:1의 법칙을 말한다. 그것은 부정적인 일이 더 상세하게 기억되고 지우기 힘든데 다섯 배 정도의 긍정적인 경험이 있으면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득 귀한 만남을 어긋남 하나에 안 좋은 감정으로 덮어씌우고,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몇 가지 실수에 매여 아쉽게 보낸 일들이 떠오른다. 5:1의 법칙 앞에 삶을 완벽하게 색칠하려는 마음이 욕심인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심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가트만 박사의 말이니 이 정도에서 자신을 풀어주기로 마음먹자(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날들은 거의 괜찮은 날이었을 테니 말이다).
또 매일의 ‘즐거움(지루하지 않음)’과 ‘의미’ 안에서 삶의 만족도를 살펴볼 것을 권하는데 이때 너무 마음만 강조하거나 물질적인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하루가 모여 ‘행복하다’라고 느끼게 한다니, 오늘을 점검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는 일은 살 방향을 확인하는 중요한 일이다.

오늘을 너그럽게 지내려면
공기가 부옇고 하늘이 어두운 날, 몸도 개운치 않으면 어떻게 기운을 내야 하나.
심리학에서는 이런 때 나를 끌어올리는 힘을 ‘자원’이라 하는데, 담배나 술처럼 해롭지 않은 방법을 갖는 것이 삶의 팁이라고 말한다. 그 팁이 쌓일수록 이로운 것이 된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나. 성경을 읽으며 자신과 주변을 인식하는 것, 옷 정리나 구석 청소 또는 좋아하는 악기나 그림을 그리는 일 등.
이에 대해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해 보지 않은 일을 하는 하루를 제안하며, 새로운 시도는 뇌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가운데 ‘듣는 것’은 다음으로 이어질 소리를 상상하게 해 뇌에 좋은 영향을 주게 되고, 좋은 음악을 들을 때 우리 뇌는 엄마 품의 아기와 같은 호르몬을 낸다고 한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유연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하게 하며 안정적인 모습을 갖게 한다는 것.

이 외에 바깥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실내에서 자극이 크지 않은 움직임을 가지면 사고의 몰입도를 높이고, 산소공급이 늘어 긴장이 완화되며 지적 능력이 향상된다고 하니 스트레칭과 왕복 걸음이라도 하는 게 좋겠다. 또 작은 스트레스에 크게 반응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자극이 되는 뉴스나 상황을 피해, 세상의 돌아가는 문제에 필요 이상 직면할 기회를 줄이는 것도 예민함을 감싸는 팁이다.
마음의 힘이 좀 있으면 그날은 상처와 흠결을 보듬는 날로 지낼 수 있다. 자녀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을 기도하며 정돈해보기도 하고, 내 삶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어떤 면을 교정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삶의 균형이 치우쳐 탈이 나지 않았는지 객관적인 눈으로 시간과 움직임, 건강을 체크해 보는 거다. 이런 날은 마치 올이 뜯겨 구멍 난 옷을 잘 꿰매거나 그 위에 수를 놓는 것과 같은 날이 되지 않겠나.
물론 이런 시(詩)를 보며 그조차 어려운 날이 있음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온종일 구두 한 켤레를 들고
울기만 하는 날이 있다.
눈물쯤은 흐르게 놔두고
콧물이나 가끔 토시 낀 소매로 훔치며
결국은 오늘의 구두를
다 짓고 있는 사람
어제와 다르다면
그 좋아하는 FM 라디오조차
온종일 켜지 않았다는 것.
- 윤제림 ‘슬픈 날의 제화공’ 중 일부


이와 함께 리스트의 피아노곡집 ‘詩, 종교적인 선율’의 배경이 된 작품을 보자.

바로 전까지 나를 사로잡던
불안과 의심의 파도
불확실함과 동요.
그러나 그것이 사라지고
나를 감싸는 평화가 느껴집니다.
진실과 선함을 발견하며
겨우 며칠이 지나자
한 세기와 세계를 넘은 듯합니다.
- 알퐁스 드라마르틴 ‘고독 속 신의 축복’ 속에서


그렇다. 우리의 애씀 외에 바람과 같이 임하는 은혜는 나도 모르게 눌렸던 마음을 일으켜 세우며 인생의 한 고개를 넘어서게 한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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