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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의 평화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노래하는 운동가 ‘나무엔’
[248호] 2020년 11월 01일 (일) 김희돈 @
   
   

10년 전 한국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에 혜성같이 나타난 이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유성. 번쩍하고 사라지는 혜성과 달리, 유성체로 날아와 척박한 토양 위에 떨어진 운석과도 같은 이였다. ‘나무엔.’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연배와 공력이 꽤 묵직했다. 무엇보다 그의 노래에는 울림이 있었다. 퍽퍽하고 거친 가슴에 그의 노래는 운석처럼 날아들었다.

나무엔이라는 나무
‘시편 23편’, ‘쉼’, ‘선한 능력으로’… 그리고 여러 찬송가. 나무엔을 연상하면 떠오르는 곡들이다. 편안하면서 따뜻함이 배어있는 노래. 잔잔하면서도 진중함이 밴 나무엔은 그의 보따리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나무엔(본명 김성호)은 인터뷰가 꽤 오랜만이라고 했다. 자신은 인터뷰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제 사역을 알리기 위해 별도의 공을 들이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아요. 무엇인가를 알려야만 일궈질 수 있는 사역이라면 굳이 계속할 필요가 있겠나 싶은 생각도 있어서요.”
담백했다. 지금껏 자신이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수동태의 표현을 좋아했다. 모든 것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그분’에 의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지나온 시간은 두 가지 태로 나눌 수 있다. 능동태와 수동태.

능동태…가능성, 좌절의 시간
나무엔은 꽤 오래전부터 음악 활동을 해왔다. 학창 시절 때부터 ‘기타 잘 치고 노래 잘 부르는 학생’이었다. 그저 노래와 노래하는 이들이 좋았다. 노래가 꿈은 아니었다. 그의 유일한 꿈은 아버지처럼 야구선수가 되는 것. 하지만 부모님은 다른 길을 제시했고, 그는 조용히 꿈을 접었다. 취직 잘 되는 학과로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다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간 학교 앞 통기타 카페에서 첫 능동태를 경험한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통기타 가수의 노래가 영 시원치 않았다.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카페 사장의 제의로 무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반응이 좋아 세 곳의 카페에서 노래 아르바이트를 잇게 되었다. 6개월 카페 가수로 맹활약한 그에게 음반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 포크 음반을 내보자는 제안이었다. 좋은 기회였지만 바로 거절했다. “군대 갔다 와서 하겠습니다~”
막상 제대 후 음악을 하려고 보니 가요계 판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포크 음악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 그래도 시장의 틈새를 노린 기획사 덕에 1996년 대중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다. TV에도 출연하며 나름의 활동을 해 나갔다.
3년 후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엔 그 유명하다는 ‘S’ 기획사. 그저 가서 계약서만 쓰면 되는 조건이었지만 관례적인 질문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계약서 작성을 잠시 보류한 것이 결국 영영 끝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두 번의 기회를 놓쳤지만 나무엔은 아쉽거나 애석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직업적인 가수가 절실하지 않았던 거예요. 당시 제 성향과 성품이 그랬습니다. 제멋대로, 아니면 말자 식으로 굉장히 냉소적이었지요.”

수동태…강한 이끌림, 다른 노래
이후 10여 년간 나무엔은 극심한 현실의 고통을 겪었다. 그가 ‘초죽음의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시기다. 경제적으로 피폐한 삶, 자존심은 애초에 꺾였다. 그래도 음악은 붙들고 있었다. 홍대와 미사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음악을 그만두었습니다. 사실 정신을 차린 거죠. 잠깐 유명해진 걸로는 생계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그는 음악을 접고 다른 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친구로부터 기독교 음반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모태신앙이지만 ‘요즘엔 교회도 안 나가고 있는 내가 무슨…’ 하며 바로 거절. 그러나 음반 판매액의 반을 주겠다는 말에 바로 마음이 동했다. 곡도 직접 써서 부르며 나름 열심히 만들었다. 하지만 음반 제작을 제안한 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람에 음반은 발매조차 되지 못했다.
또다시 좌절을 맛보게 됐지만 나무엔은 곡을 부르고 녹음하는 과정 속에서 예상치 못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노래에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동안 주제 없는 노래를 해온 게 아닌가라는 생각. 무엇보다 ‘나를 사용하소서’라는 기도문의 곡을 만들었다. 누가 기도하라고 하면 손사래부터 쳤던 그였는데 기도문을 쓰고, 그것을 노래하다니.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후 나무엔은 한 교회의 선교사 후원 행사에서 기타를 잡게 되었다. 큰 부담없이, 무겁지 않게, 무대에 섰다. 장소가 교회인 만큼 시편 23편을 자신의 스타일로 바꿔 불렀다.
“듣는 분들이 그때 다 우시더라고요. 고단한 인생이 서러우셨는지… 저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당시 엄청난 반향이 일었다. 나무엔은 그때부터 교회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가족처럼 자신을 지원하는 분들을 만나 계속 찬양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졌고, 서울 온누리교회의 열린예배팀에 합류하면서 찬양사역자로서의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기독교 음반이 발매되지는 못했지만 그때가 노래를 내 것으로 소화하는 시작점이었죠. 그때 만들었던 ‘나를 사용하소서’를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 같습니다.”

이끌림의 손길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얼떨결’에 맞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찬양을 부르게 되었고, 그렇게 사역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수동태의 삶을 본격적으로 살았다. CCM에 자신의 음악철학을 녹여 부은 것도 아니다. 아는 곡도 별로 없어 어릴 적 불렀던 복음성가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콘셉트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차별화가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의 상황 속에서 곡을 만들고 불렀다. 이끌림 받아 시작된, 수동태의 사역 현장 아니던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의 형편대로, 홀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이끄는 대로 걸어갈 뿐이다. 걷게 하신 길, 주시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고 부를 뿐이다.
그는 작년까지 ‘작은숲콘서트’를 열었다. 삶의 이야기를 노래와 글로 만드는 나무엔의 독립출판사 ‘착한음악연구소’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매월 한 번씩 기타 메고 찾아가는, 소규모 순회 콘서트로 노래와 함께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곳에서 나무엔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관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서로의 삶 속에서 묻어나는 작은 평화에 함께 웃고 운다. 그렇게 함께한 시간은 다시 노래로 이어지곤 했다.

‘평화운동가’ 나무엔
나무엔은 두 개의 앨범을 보여주며 자신에 대한 소개를 대신했다. 의례 자신을 찬양사역자로 표현하는 모습이다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찬양사역자라기보다는 ‘평화운동가’에 가깝다고 의외의 소개를 했다.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하는 일이 세계평화를 위한 것입니다. 콘서트를 갖는 것도 세계평화 때문이죠.”
너무도 진지한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올 수 없었다. 평화, 세계평화….
생각해 보니 9월에 ‘고통의 연대’라는 주제로 발표한 4곡 가운데 첫 번째 곡인 〈집으로>도 그가 말하는 평화의 냄새가 배어있는 듯했다.

너 어디 가니 집에 안 가니
밤늦은데 왜 여기 있니
뭐가 그리 답답해서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니
집으로 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내가 어딜 가니 어딜 가겠니
내 집으로 가야지
날 싣고 달리는 마을버스 타면
창밖을 볼 거야 저 불빛들 따라서


‘거친 세상, 그 틈새의 평화를 노래하다.’ 나무엔이 현재 나아가고 있는 삶의 방향이다. 이어 발표한 <아버지>도, 곧 선보일 <나의 한숨이 그대를 닮아>와 <살아내라>도 역시 틈새의 평화를 노래한다. 특히 <살아내라>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는 한 개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는 고통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이 순간에도 고통 당하는 현장이 있으나 틈새마다 있는 평화를 찾아 겹겹이 쌓아가다 보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평화를 조금 더 보게 되겠지요.”
나무엔은 그간의 삶이 ‘내가 무언가를 했다’ 보다 ‘된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직은 소극적인 평화 운동가지만, 역시 수동태의 길임을 믿는다. 계획했으나 이루어지지 않는 일에도 초연하다. 지난 시간처럼 천천히, 주어진 마음을 품고 완만하게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거칠거칠한 세상, 그러나 어김없이 드러내는 틈새의 평화, 그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며 노래하고 싶습니다.”

김희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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