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문래동 철공단지 예술촌>

김승범 기자가 직접 걸으며 오감으로 느낀 특별한 공간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빈 공장에 찾아온 예술가들
1970, 80년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철공단지였다. 개발도상국가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시점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호황을 누리던 곳이었다. 그러다 80년대 말 서울시에서 일부를 외곽지역으로 이전시키면서 점차 쇠락해갔다.
그런데 2000년대부터 빈 공장과 빈 건물에 뜻밖의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 왔다. 예술인들이었다. 홍대, 신촌의 높아지는 임대료를 피해 문래동 철공단지에 작업실을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모인 예술가들은 장르를 떠나 커뮤니티를 갖고 갤러리를 만들고 골목과 공장에 예술을 심기 시작했다. 2007년에 ‘문래 아트 페스티벌’을 시작해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자연스레 철공단지에 ‘예술’이 동거하여 문래동 예술촌으로 자리를 잡은 것.
사람이 모이면 먹고 마시는 공간은 따라온다. 주로 젊은이들의 감성으로 카페와 음식점, 공방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주말이면 줄서서 찾을 만큼의 맛집들도 적지 않게 되었다.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만든 멋
아침 8시면 소공장의 셔터 올라가는 소리로 시작된다. 공장을 지나다 보면 철을 자르고, 깎아내고, 뚫고, 휘고, 접고, 용접하는 수많은 저마다의 소리와 쇠 비린내, 타는 냄새, 기름냄새가 일반이다. 이곳의 기술자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수십 년을 기술 하나로 버티고 살아온 분들이다. 예술가를 창작의 가치로 높게 본다면 기술자는 한 분야에서 성실과 고도의 기술력으로 가치가 높은 장인들이다. 초등학교 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따는 뉴스를 많이 본 기억이 난다.
소공장 건물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 때 일제의 병참기지를 건설할 인력들을 수용할 건물로 지어졌다. 붉은 벽돌의 세모지붕 구조이며 다양한 크기로 지어졌는데, 곳곳에 낡은 공장과 대치되는 현대식 카페, 음식점들이 이색적으로 보인다.
골목을 지나던 중 클래식 성악곡이 크게 울리는 한 철공소 앞에 멈췄다. 철재들이 잔뜩 흉물스럽게 쌓인 곳에서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울려 퍼진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에 울려 퍼진 음악을 들었던 죄수들처럼 멈춰 서서 들었다. 그 건물 옥상에는 낡은 십자가가 있었는데, 잠시 후 말끔한 유니폼을 입은 사장님이 나오셨다. 나도 모르게 반갑게 음악에 대해 얘기하며 이것저것 물었다. 그 건물 교회 장로님이셨다.
“시뻘건 철재파이프 속에서 장사하지만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맘이 좋아집니다.”
날카롭고 차가운 철재 속에서 가슴 따뜻해지는 만남이었다. 사실 카메라 들고 공장 주위를 다니면 주위 시선들이 곱지 않다. 힘들게 일하는데 구경한답시고 들여다보고 사진 찍는 모습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장로님처럼 음악이라도 틀고 일하면 어떨까도 싶지만 정밀하고 위험도가 높은 일에 여유로움이 들기 쉽지 않으리라.

스토리 알고 ‘다시 보기’
코로나시대에 새로 유행하는 것이 있다. 가까운 곳을 새롭게 둘러보는 여행으로 스토리를 알고 다시 보기를 하는 여행이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가치의 차이’가 생긴다. 모든 빈티지에는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데 빈티지의 현대적 해석은 소외된 것에 미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쇠락해가던 철공단지가 예술인들의 참여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 흥미롭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문래동 예술촌을 보았다면 반세기 문래동의 역사와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들에게 격려의 눈빛을 보내면 좋겠다.
타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사는 일, 나로 인해 누군가 배우고 누릴 수 있는 인생이라면 노년의 주름일지언정 괜찮은 빈티지 아니겠는가.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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