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주네와 스승 이야기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장 주네(Jean Genet, 1910-1986)는 참으로 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생후 7개월 만에 친모로부터 버려진 그는 위탁 부모 아래에서 자라게 됩니다. 위탁 부모는 정부 보조금 수령을 목적으로 장 주네를 맡아 길렀지만,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주네를 친자식처럼 사랑과 정성으로 양육합니다. 그래서 주네는 불우하지 않게 의외로 평탄한 유년기를 보냅니다. 게다가 프랑스어와 라틴어에 탁월한 재능을 선보이며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면 착하고 얌전한 주네인데, 손버릇이 무척 안 좋았던 거예요. 도둑질을 일삼다가 결국 청소년기에 감옥까지 가게 됩니다. 출소한 후 군대에 입대하는데, 특이한 것은 정상적으로 제대한 후 또다시 자원입대했다가 이내 탈영했다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기행이지요. 이후 탈영병으로 도둑질과 매춘 행위를 하며 전 유럽을 떠돌아다니다가 체포되어 다시 교도소를 들락거리게 됩니다. 자잘한 혐의가 쌓이고 쌓여, 10가지 유죄판결 끝에 결국 종신형까지 선고받습니다.

그런데 이때 구세주가 등장합니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장 콕토가 주네를 구하기 위해 나선 거예요. 콕토는 당시 대통령마저도 무시할 수 없는 프랑스 문화예술계 최고 거장이었습니다. 그런 콕토가 대통령과 재판부를 향해 “당신들이 주네를 평생 감옥에 가두는 것은 프랑스의 위대한 문화적 보물을 폐기하는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그러면서 장 폴 사르트르· 파블로 피카소도 주네 구명 운동에 동참하지요. 그 결과 주네는 대통령 특별조치로 사면 받아 풀려납니다.

그렇게 석방된 주네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도둑질 습관이 없어진 거예요. 주네는 이후 단 한 건의 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더 나아가 약자와 소외된 자를 위해 싸우며, 평생 성자처럼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번의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주네가 도둑질 습관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과거 범죄가 모두 일종의 ‘연기’였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주네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연극’을 했던 거예요. 그걸 장 콕토가 알아봤던 겁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 거지요. 주네는 이에 부응하듯, 자신의 인생실험이 반영된 <하녀들>·<발코니>·
<흑인들>·<병풍들>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래서 주네 구명 운동에 함께 했던 장 폴 사르트르는 <聖人 주네>
(Saint Genet)라는 책을 펴내며, 그의 작품을 “언어로 표현된 고행자 같은 실험”이라고 평합니다.

진흙 속에 있는 진주를 찾고, 새싹을 격려해 꽃을 피운 플롯의 영화는 무척 많습니다. 1967년 작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을 비롯해, <위험한 아이들>(Dangerous Minds, 1995),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 등. 감동을 노리는 플롯이긴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꾸준히 호평 받아왔던 건, 의지할 수 있는 멘토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그만큼 절실했던 반영이 아닐까요.

<파인딩 포레스터>(Finding Forrester, 2000)에서 윌리엄 포레스터는 퓰리처상 수상 이후 갑작스러운 성공이 부담스럽고 실패가 두려워,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린 은둔 작가로 나옵니다. 그런 그가 농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 자말 월러스를 알게 되면서, 그의 문학적 재능을 발굴함과 동시에 자신 또한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습니다.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Freedom Writers, 2007)는 고등학교에 부임한 20대의 초임 교사 에린 그루웰이 인종차별과 가난에 얼룩진 학생들의 인생관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에린은 학생들에게 글쓰기 훈련을 시킵니다. 글을 통해 내 말을 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거지요.

이런 영화 속 스승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신 ‘해답’에 관해서 이야기해요. 정답은 하나일지언정, 해답은 다양합니다. 즉 목표를 가리키기 전에, 다양한 길을 제시해요. 그리고 대화합니다. 대화를 통해 겉모습에 가려진 속사람을 찾아내요. 언어의 유통은 기본적으로 담론적이기에 다양한 의견이 서로 충돌하고 화합합니다. 일방적인 말을 대화라고 하지 않지요. 대화는 소통이고 교류이기에, 말하는 만큼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스승이요 멘토가 되고 싶은 분들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말하는 것만큼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말이죠. 말해서 가르치기보단, 들음으로써 서로를 알아주는 사회를 기대해봅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