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가게에 가면 안티에이징(anti-aging) 코너를 만나게 된다. 주름을 막아준다는 크림, 에센스를 비롯해, 두피 노화를 방지하는 앰플, 탄력을 생기게 하는 얼굴 마사지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30대부터 안티에이징은 필수죠”라고 말하며 다가오는 직원까지 마주치고 나면 어느새 손에는 제품 하나가 들려져 있다. ‘안 쓰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요즘 나이 들어보였는데 아무래도 조금 좋아지겠지?’라는 생각에 가뿐해진 발걸음 뒤로, ‘이런 제품에 관심 가는 나이인건가?’하는 묘한 자각도 뒤따라온다.

안티-에이징은 ‘나이 듦을 방지하는’, ‘항노화’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나이 듦과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노화가 맞서 싸워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대상일까.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오는 변화가 나이 듦이고, 그렇기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며 전에 없던 혈압이나 당뇨, 관절염, 류머티즘과 같은 만성질환이 찾아온 경우 질환 자체를 부정하거나, 조바심을 내며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괴로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건강했던 내가 그럴 리 없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면 내 인생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이런 상태로 내가 뭘 할 수 있지?’,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될까?’, ‘내가 즐기던 것들을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 걸까?’와 같은 분노와 두려움, 좌절의 목소리가 가득 차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상태로 묶어둔다. 간편하게 배터리를 갈아 끼우거나, 엔진을 통째로 갈아 끼워 기능을 대체시킬 수 있는 기계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언가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거스르는 ‘안티에이징’에 시선을 둘 때, 변화된 신체 조건은 맞서 싸우고, 없애고, 돌이켜야 할 대상이 된다. 시간이 흘러 노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괴롭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웰에이징(Well-aging)의 시선에서 본다면 어떨까. 변화된 상황을 새롭게 배우고 받아들여, 새로운 현실을 잘 다룰 방법을 훈련할 기회이다. 즉, 변한 현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 더 나빠지거나, 기능이 더 손상되는 것들을 막고, 최선의 상태로 복구시켜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신체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 또한 고통을 거부하거나 없애기 위해 맞서 싸울수록 불안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심리학자 스티븐 헤이즈(Steven C. Hayes)는 ‘우리는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애쓸 때 오히려 그 고통에 휘말리게 된다’고 하였다. 헤이즈의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는 우리의 감정과 감각이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맞서 싸워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이를 받아들임, 즉 ‘수용’(acceptance)이야말로 변화의 출발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받아들이기 위해 무엇부터 해 볼 수 있을까. 받아들일 대상을 먼저 잘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잘 보기 위해서는 ‘알맞은 거리’가 필요하다. 내 손을 보려고 바로 눈앞에 대면 온통 시커멓게 보이는 것처럼, 내가 바라봐야 할 상황, 생각, 감정이 내게 밀착되어 있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 너무 멀리 있으면 제대로 볼 수 없는 것만큼이나, 너무 밀착되어 있어도 바라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이치이다. 그러니 그 곳에서 걸어 나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시작이다. 거리를 두면 유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 감정들이 지닌 가치가 보인다. 나의 자리에서 빠져나와 나를 잘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 보자. 그 거리는 내 작은 두 팔을 벌려 따뜻한 가슴을 열고, 나를 꼭 안아줄 수 있을, 딱 그만큼의 거리이다.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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